[한도숙 칼럼]칠보시(七步詩)

  • 입력 2009.03.02 08:24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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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煮豆燃豆 (자두연두기)/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위의 시를 해석하면 이렇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볶으니/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볶아대는가.”

씁쓸한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위(魏)나라 문제(文帝)는 조조(曹操)의 맏아들 조비(曹丕)이다. 그에게 아우가 있는데 동아왕이며 이가 바로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曹植)이다. 위의 작품은 바로 조식의 작품이다.

조조는 무장 출신이었으나 시문을 애호하여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고 하며 이로 인하여 문학의 한 계보를 발전 시켰다고도 한다. 이와 같은 조조의 영향을 받아서 맏아들인 조비와 셋째 아들 조식도 글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특히 조식의 재주는 천하문장을 열 말이라고 했을 때 아홉 말을 그가 지녔다고 했을 정도로 당대의 대가들로부터 인정받는 문장가였다.

조조는 이러한 셋째를 더욱 총애하게 되어 한때는 맏아들 비를 제쳐 놓고 식으로 후사를 이을 생각까지 했었다. 조조가 죽은 뒤 조비는 위왕을 세습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후한(後漢)의 문제가 된 것이다. 어느 날 문제는 동아왕으로 책봉된 조식에게, 자기가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지으라고 명령했다.

위왕의 후사문제에서 걸림돌이 되었을 법한 조식을 제거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포함된 것이 이 시의 탄생 배경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일년을 맞이했다. 어쩌면 내부적으로 샴페인이라도 터뜨렸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씁쓸하다 못해 분노한다. 대권을 잡고 권력의 주변을 두껍게 자신의 세력으로 둘러치고 이제 국민들을 향해 자신의 눈높이에 맞추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그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모두가 악(惡)이며 제거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리하여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모든 행위에 재갈을 물리고 오라를 내어 민다. 20년전으로 돌아간 민주주의나 10여년전으로 돌아간 남북관계,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밀어 부치기 식 통치는 결국 용산의 참사를 일으키고 말았다.

약자눈물 안중에도 없는 정권

자본의 이익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약자의 눈물 따윈 안중에도 없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밀어 부치다 무고한 목숨들을 앗아 버린 것이다. 국민을 대하는 것이 마치 칠보시의 콩대가 콩을 볶듯이 볶아댄다. 어찌 이다지도 급히 볶아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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