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 구경과 시골길

  • 입력 2009.02.23 07:59
  • 기자명 황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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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추위가 위세를 부리고 있지만 벌써 입춘, 우수 모두 지났으니 봄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는 부지런한 농사꾼들은 늘 계절을 앞서서 살아가기에 벌써 씨앗이랑 비료 준비까지 모두 끝내고 출발선에 선 육상선수들처럼 마지막으로 몸을 풀고 계신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곧 다가올 봄 꽃구경 길에 만나게 마주 치게 될 풍경에 대해서이다. 새벽부터 서둘러서 짐을 챙기고, 고속도로를 바쁘게 달린다. 도시민들에게 시간은 한정돼 있고, 볼 것은 많다. 길을 막는 모든 것이 악이고 잘 달릴 수 있는 길이 선이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벗어나서 국도나 지방도를 통해서 목적지로 갈 때면 갑자기 차들이 속도를 줄이고 길이 막힌다.

거름을 가득 실은 경운기가 털털거리며 간다. 검정비닐봉지랑 호미하나 실은 고물 유모차를 할머니가 밀고 가신다. 아니 기대어 가신다. 트랙터가 쟁기, 로터리를 달고 소리만 요란하게 천천히 간다. 길 건너 과수원에 가는 SS기(스피드스프레이)도 만나고, 봄에는 이앙기가. 가을에는 콤바인이 도로에 가득 진흙을 뿌리며 천천히 다닌다.…….

▲ 황중환

잘 뻗은 시골도로를 달리다가 이유 없이 막힌다면 앞에 분명 이런 분들이 가고 계신 거다. 나들이를 가다가 이런 분들을 만날 때 속으로 욕해본 경험 다들 있을 것이다.

허나 그 길에 선 그들에게 경적소리를 울리고 속으로 욕하기 전에 농사꾼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보라. 큰 차가 빨리다니는 위험한 길이 좋아서 다니는 농사꾼은 없다. 또한 그 길을 지나게 되면 최대한 빨리 가려고 노력한다. 등에 땀을 삐질 흘리면서 말이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서 진정 불평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아스팔트로 포장이 잘된 대부분의 시골길들은 아주 좁은 길이었고, 우마차가 한대 다닐 신작로가 되고, 지금의 국도 몇 번이 되고, 지방도가 되었다.

그런데 누가 길을 넓혀 주었는가? 당연히 국민의 세금으로 길을 포장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처음 좁은 산길을 우마차 길로 만든 사람들은 아직도 시골을 지키는 지역 농사꾼들이었다.

새마을운동이란 이름으로 지겹던 부역을 나가고 읍내 나가는 우마차 길을 만들기 위해서 동네사람들이 무수히 삽으로 곡괭이로 산을 파고 골을 메워나갔다. 길을 만들어 놓으면 정부에서 포장해준다고 해서 너무 고마워서 또 일을 했단다. 그렇게 길이 만들어지고 확장을 거듭해 온 길이 전국에 무수히 많다. 그래서 국도, 지방도는 꼬불꼬불한 길이 많은 것이다.

동네부근 진입로, 농로 길은 더하다 새마을운동이라는 서슬 퍼런 이름을 들이밀어서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농민들의 땅을 기증, 희사의 이름으로 빼앗아 길을 만들었다.

지금이야 자기 땅이 개발에 들어가면 보상받고 좋아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자기 땅을 개발구역에 넣으려고 애쓰지만 부역으로 길을 넓히던 시절에는 동네길을 넓힌다는데 땅을 내놓으라면 힘없는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길이 넓어지면 읍내 다니기 편하고 농기계 다니기도 좋으려니 하고 좋아했다. 도시에 나갈 자식들이 돌아오기 좋으려니 하던 그 농사꾼들이 예전부터 농사지으러 다니던 길,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길에서 차량의 눈치를 보고, 못할 짓을 하는 사람처럼 땀을 흘려야 한다.

요즘에는 도로 옆에 농기계 통행로가 생기는 추세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시골도로는 본래 그 길의 주인인 농사꾼들에게 길을 잃게 만들고 있다.

흔히들 70년대 경제성장이 농촌의 저곡가 정책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농촌과 농민들이 70년대에만 있었는가? 올 봄 꽃구경을 나서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더불어 시골길에서 이분들을 만나면 경적을 울리고 화내기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인사를 나누며 지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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