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잡초가 밉지 않은 이유

  • 입력 2009.02.16 06:48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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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0, 70000, 2, 16800000.

이 암호 같은 숫자를 풀어보면 내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부회장 4년 임기 동안 1년에 서른 번 넘게 서울에 올라가고, 편도 7만원 정도의 왕복 비행기 값으로 하늘에 뿌린 돈 액수이다.

옛날 사회과 부도를 펼치고 우리나라 팔도강산을 손으로 짚으며 지리적 감각을 익히느라 애썼던 기억을 떠올리며 비행기 창 밖을 볼 때가 많았다. 굽이굽이 강 따라 옹기종기 모인 농촌마을, 고층빌딩도 없는(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 도시와 농촌이 이어져 조화롭다.

김옥임 제주도 서귀포시

촌스럽다고 할까봐 속마음으로 감탄사를 삼키며 그 풍경을 감상하면서 그 속에 사는 우리도 더도 말고 저렇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평화롭게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었다.

만약 하느님만큼은 아니지만, 하늘 높이 떴으면 싶었던 나의 바람만큼만 이루어졌어도 우리 회원들 일년내내 밭고랑에서 일하며 힘든 몸에게 미안해서라도 찜질방이라도 갔다 왔을 돈이다.

아니 농업의 영향을 미치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정부가 돈이 없어 연구를 못한다면 선뜻 그 자금으로 내놨을지도 모를 그 돈이다. 하지만 땅에 내렸을 때 나의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오랜만에 여유 있게 양배추 밭에 가 보았다. 주인 손이 덜 간 티가 나는 양배추는 과잉생산(?)으로 똥값이 되자 지자체와 농협이 협의 하에 산지 폐기가 아닌 수매해서 판로를 책임진다고 했다. 그 노력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계약했더니 요 며칠 전 수확해 가지도 않고 잔금은 포기하란다.

그 노력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내 이럴 줄 알았지’ 하는 생각에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안한 마음에 한 통 캐고 온 양배추를 삶아 맛나게 차린 저녁상 앞에서 그 근본문제 해결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기억들이 생각나 목이 메였다.

지하철 한 번 타보지 않았던 제주도 촌년이 국회 앞에서,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청계천 광장에서, 걸어도 걸어도 미로 같던 서울 거리에서... 가슴 아파 그 가족에게 위로의 말조차 감히 못했던 몇 분 열사들의 빈소 앞에서...

달라질 줄 알았다. 아니 달라져야 맞지 않는가! 하지만 돌아와서 내 귓가에 들리는 건 가속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농업정책 앞에서 지칠 대로 지친 농민들의 한숨소리다. 농민들 이기주의라는 일부 시선에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자긍심도 무너져가고 있는 농민들의 모습이다.

추위가 풀려서 그런가 더 파릇파릇해진 토종씨앗으로 심은 보리밭에 섰다. 기분을 푼다며 동네 아줌마들이랑 오름을 다녀오다 소박한 식당에서 먹었던 ‘보리된장비빔밥’이 생각나 군침이 먼저 입 안에 돈다. 보리가 끝나면 토종 옥수수, 토종 콩을 심고 그 밭가엔 토종 참깨도 좀 뿌려야지.

그걸 수확해서 얼굴 있는 상표를 붙이고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들과 나누면서 식량주권 지킴이 단도 같이 만들어야지. 농업은 온 국민이 함께 지켜야 함을 온 몸으로 보여줘야지. 국민이 인정 하에 정부에서 농민우대증을 발급해 줄 때까지. 

그리고 우리가 생산한 종자로 도시의 작은 텃밭들이 파랗게 넘실거릴 때까지...갑자기 할 일이 많아진 나의 눈에 보리밭에 난 잡초가 미워 보이지 않는 건 웬일일까?

<김옥임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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