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정월대보름날의 자화상

  • 입력 2009.02.16 06:46
  • 기자명 박민웅 전농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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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패를 앞세운 지신밟기 행렬. 동네 곳곳에서 쥐불놀이 하며 코밑을 까맣게 물들인 아이들. 가족건강과 이웃의 안녕을, 한해 풍년농사를 기원하며 함께 어우러졌던 정월대보름 우리네 풍속이 40대 후반인 나에겐 엊그제 같은데 아득한 옛날 기억으로 아물아물한 것은 왜일까?

지속가능한 농업 빌어보지만…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오늘의 농업, 농촌, 농민문제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예전에 경험했던 정월대보름날 같진 않지만 웅장하고 화려한 달집을 면단위나 군단위에서 볼 수 있었다.

쥐불놀이하던 아이도, 달집을 짓는 청년도 달집 소품을 나르던 젊은 아낙네도 각자 집집마다 만든 정월대보름 음식으로 정을 나누던 모습은 사라지고, 트럭이 동원돼서 큰 나무를 나르고 포크레인이 기둥을 세우고 이벤트 회사에서 나온 놀이꾼들이 규모 있고 화려하게 형상을 만들었지만 아쉽고 가슴이 텅 비어 있었다.

▲ 박민웅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

허장성세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슬픔이 가슴을 찔렀다. 미신이라고 터부시할지 모르지만 어린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청년들에게 염원을 담아내는 문화적 장이 정월대보름 잔치였다.

아이들과 청년들이 있기에 달집 허리에 소원지를 달아서 천지신명께 소원을 빌었건만 지금 우리 앞에 웅장하고 화려하게 세워진 달집에 어떤 소원지를 달아야 할까. 희망과 꿈의 대상이 없는데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 소원을 빌어야 할까. 답은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이 되도록, 잘 사는 농촌이 되도록, 행복한 농민세상 만들어 달라고” 천지신명께 빌어야 한다.

이렇게 정월대보름이 정겹고 따뜻함 보다는 썰렁하고 참담함을 뼈저리게 느껴지는 우리 농업, 농촌, 농민의 현실이 우연이 아닐 텐데 원인과 해결방식은 무엇일까.

농민은 농사지어 수지가 맞아야 하고, 빚은 지지 않아야 하는데 수지 타산은커녕 빚에 눌려 농약으로 음독하거나, 야반도주하듯이 도시로 쫓겨 도시빈민으로 내몰리는 작금의 현실은 무엇일까. 이렇게 방치해도 될 만큼 우리의 농업, 우리의 먹을거리, 우리의 생명산업이 안전할까.

오늘의 세계정세는 자원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특히 식량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구상의 60억 인구중 10억이 넘는 사람들은 만성적으로 영양실조 내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세계 유수의 곡물 수출국들이 각종의 장치를 마련해 수출을 막고 있고 초국적 식품기업들은 종자, 자본, 식량 독점을 통해 세계 유통시장을 왜곡시켜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 탐욕이 부른 지구온난화로 자연재해와 농지의 사막화 곡물을 이용한 바이오에너지화 등 식량을 둘러싼 각축전이 예견되는데 식량자급률이 26%인 우리는 어떻게 대비할까?

안으로는 먹을거리의 생산토대인 농지의 규제완화 정책을 통한 농지 침식과 토지를 투기 대상으로 만들고 생산비도 받지 못하는 농업정책은 농민을 농촌에서 내몰고 농업과 함께 육성 발전되어야 할 농업관련 산업은 외국자본에게 빼앗기거나 고사당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 조류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국익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잘못된 인식, 법, 제도를 바꿔야 한다. 또한 농업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농업은 생명산업, 기초산업으로서 2·3차 산업과는 가치가 달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공업국에서 사회적 비용을 초과지출하기도 한다.

식량자급률이 100% 이상인 나라에서도 추가 투자를 하고 있는 경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많은 국민들 또한 잘못되고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다. “우리는 수출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농업을 희생시키는 것이 농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말이다.

2008년의 세계 곡물파동이나 광우병 쇠고기 사태 때 사회적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우리 농업을 왜 지켜야 하고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를 만들지는 못했다.

먼저 농민 스스로 농업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가치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국민들의 사회적 경각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식품의 안전성 문제가 왜 발생하고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인식해야 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법,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농민 생존권, 행복 스스로 찾자

또 우리 농업을 천박하고 왜곡평가하게 만들었던 세력이 누군지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초국적 자본은 한나라의 법, 제도를 바꿔서라도 자본의 이익을 관철시켜 왔다. 그리고 사회적 인식까지도 바꾸고 있다. 이런 세력들의 음모를 물리쳐야 한다.

많은 문제점을 봤다.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많다. 문제해결의 단초는 이해 당사자로부터 출발한다. 농민이 바뀌고, 단결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국민적 합의와 대동단결을 통해 수탈세력인 초국적 자본과 여기에 기생하려는 소수 기득권 세력을 제압해야 한다.

또한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제 자리로 돌려놓고 국민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농민들에게는 생존권과 농민행복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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