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출자한 쇠고기 직판장

  • 입력 2009.02.09 08:04
  • 기자명 문영미 전남 순천시 황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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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승씨 안녕? 얼굴 본 지가 언젠지 모르겠네. 재작년 늦가을에 보고는 못 봤으니 일 년도 훨씬 넘었네.
20대 후반에 한국농업에 미래를 우리 어깨에 다 짊어지고 나갈 열정으로 출발한 농민의 길이 올해로 벌써 17년째네.

물론 평생을 농사일로 살아온 우리네 시어머니들에 비하면 “호랑이가 물어갈!”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짧지만 말이야.

어제는 송아지 두 마리를 인근농가에서 사서 우리 축사로 옮겼다네. 한 8개월 전에 내가 사는 면지역 농민들 30여명이 모여 한우고기 집을 열어서 키우던 어미 소들을 비육시켜 매장으로 냈더니 축사가 많이 비어 새로 송아지를 사서 넣은 거지.

▲ 문영미 전남 순천시

새로 사온 송아지가 울어대는 것이 꼭 어린아이가 엄마 찾는 폼이네. 한 며칠 시끄러워도 참아야 되겠어.
쇠고기 직판장 덕에 소를 팔 때 제값 받아 좋았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서 좋았지.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쇠고기를 질리게 먹어본 건 처음일 거야. 생일, 명절 등 특별한 날이나 그것도 국거리로만 먹었던 것이 이젠 먹다 남아 기르던 개에게까지 찌꺼기가 떨어지니 가히 쇠고기 풍년이네.

특히 수입 쇠고기는 광우병 걱정으로 먹기가 두려운데 내가 친환경 적으로 키운 소를 먹는 것이라서 소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네.

한번 먹어본 사람들은 국물 맛이 다르다고 내게 사다줄 것을 부탁한다네. 우리 뒷집 새댁은 급하게 손님이 온다고 떡국에 넣을 쇠고기가 떨어졌는데 우리 매장 고기가 맛이 있으니 우리 집 냉장고에 남은 고기라도 있으면 달라더군.

또 우리 매장은 지역사회에 봉사하고자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지역아동센터에 식사대접, 고기 기부 등을 하고 있지. 매장을 이제 시작해 갚아야할 빚도 많은데 봉사활동은 무리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것이 다른 매장과의 차별화라는 차원에서 계속하고 있지.

출자자들의 조건과 의지가 다양하여 부딪치는 문제가 제법 많지만 농업·농촌에 이바지 하고자 하는 원래 취지에 부합되게 이끌어 가면 성공하리라 믿는다네.  자네도 언제 와서 실컷 한우의 진미를 느껴보게나.

입춘이 지나갔네. 올 봄도 어김없이 우리 사는 곳에선 매화향기 그윽한 봄을 맞겠지. 처음 시집와선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풍겨 와서 도대체 어디서 나는 향내인지 궁금했는데 온 동네 구석구석에 조성되어 있는 매화 밭에서 나더군.

이 정도면 우리 동네는 무릉도원이 아닌가? 매화 밭에 미처 전정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빨리 서둘러야겠어. 작년 가을에 남의 산을 임대해 새로 조성한 매화 밭도 가봐야겠고 조성한지 오래된 매화 밭엔 벌목, 전정 작업도 병행해야지.

어떤 이는 매실도 많이 심어져서 파동이 올 거라고 하고 나 자신도 미친 짓 하는 것 아닌가 의심하지만 바라보고만 있을 수도 없으니 오늘 한 그루의 매실나무라도 심는 것이 농부가 할일이 아니겠나? 

첩첩산중에서 넓은 바다를 앞마당으로 삼고 사는 친구에게 편지로 썼네.  몇년전 자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자네 시어머니가 그날 아침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게로 무친 양념게장이 아직도 입가에 군침을 돌게 하네. 가족들 모두 건강하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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