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이 되는 즐거운 상상

  • 입력 2009.02.02 07:51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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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막내딸 돌이었다. 귀한 딸이기는 하나 셋째인데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돌잔치를 하는 것이 부담될까 봐 집에서 우리 가족만 오붓하게 축하하려 했다.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가 섭섭해 이웃 아줌마 몇 분만 잠시 오셔서 식사하시라고 모셨더니 기어코 가실 때 돌밥은 그냥 먹는 게 아니라며 만원씩 건네주셨다.

시골 살림이 다 거기서 거긴데 사람들에게 부담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괜한 짓거리 한 것이 아닌가 죄송스러웠다.

지난해 계획은 집을 지어서 집들이 겸 돌잔치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을 짓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단연 농사를 지어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나락도 심고 집 앞에다가 콩도 심으려고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결혼과 더불어 농촌에 정착했다. 6년이 되었지만 출산과 육아로 제대로 된 영농을 경험한지는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갓 돌이 지난 막둥이에겐 미안하지만 올 3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낼 계획이다. 집 가까이 여성농업인센터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있어 편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3월이면 본격적으로 농사꾼으로 되돌아간다. 초보 농사꾼이지만 내 마음은 벌써 하우스로, 논으로, 밭으로 나간다. 매일 저녁 ‘올해는 어떻게 농사지을까’ 즐거운 상상을 한다.

하우스에는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려 있고, 봄에는 지난 가을에 심은 양파랑 마늘이랑 캐서 친정에도 보내주고 형제들도 나눠먹고, 그러고 나면 나락을 심고…(우리집은 하우스 농사만 지어서 쌀을 사다 먹었다.)
얼마전 토종씨드림 모임에 가서 울 타리콩, 돈부, 푸른콩, 선비콩, 제비콩, 수수, 대파, 고추 등등 토종종자를 얻어왔다. 이놈들은 어디 심을까?

울타리 콩은 화분에 심어 집 지붕으로 올려놓고, 몇 개는 일찍 하우스 안에 심어본다.

집 뒤에 손바닥만한 텃밭에 선비콩이랑 제비콩이랑 조선오이를 심고, 논두렁에는 흰 돈부를 심고, 하우스 앞 쪽에는 옥수수를 심어본다.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면 오이는 맛나게 무쳐먹고 난생 처음 접했던 선비콩이랑 제비콩이랑 여러 콩들을 맛을 보고, 흰 돈부는 빈대떡을 부쳐먹어도 맛있다고 하니 기름에 지글지글 빈대떡도 부쳐본다. 아∼ 행복하다.

고추랑 콩도 심어야 하는데 어디심지?  땅을 빌려볼까? 누가 빌려줄까?
그냥 땅도 없는데 욕심부리지 말고 하우스나 열심히 할까?

나는 매일 밤 즐거운 상상에 빠진다. 그리고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것까지 1년 농사를 그렇게 매일 밤 지어본다.

하지만 지금의 농촌현실이 그렇듯 올해도 수확하기 무섭게 이자 갚고, 기름 값, 인건비, 비닐 값 갚느라 종종거릴지도 모른다. 손에 돈 한 푼 쥐어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농사를 지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할지도 모른다.

그것까지 생각하면 나의 즐거운 상상은 이제 한숨이 되어 나의 입 밖으로 나오면서 내 어깨의 무거운 짐으로 자리 잡는다.

정말로 머리 아픈 일이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 나는 즐거운 상상만 하고 싶다. 어디 농작물이 나를 속이는가 세상이 나를 속이는 것이지. 세상이 나를 속이면 아스팔트농사를 지으면 되는 것이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따뜻한 봄이 온다. 우리 농사꾼에게도 봄이 오겠지. 그 따뜻함이 시작되는 봄, 나는 다시 초보농사꾼으로 되돌아 갈 3월을 기다린다.

 한승아 경남 함안군 군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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