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기의 농사이야기 - ①

복숭아와 나의 갈등

  • 입력 2007.08.27 10:01
  • 기자명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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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이중기 시인의 농사이야기 연재

한국농정신문은 이번 호부터 경북 영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시인 이중기(50) 씨의 글을 ‘농사이야기’라는 칼럼으로 고정 게재합니다. 

이중기 시인은 1992년 시집 ‘식민지 농민’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숨어서 피는 꽃’, ‘밥상 위의 안부’, ‘다시 격문을 쓴다’ 등이 있습니다.

▲ 이중기 시인
“아부지요, 23일 날 개학하는데요.” 사흘 전인가 던졌던 질문인데 오늘에야 아들놈은 그 대답을 한다. 천상 나를 닮았다. 어머니 표현으로 오늘 저녁에 물으면 내일 아침에 대답을 할둥말둥이란다. 그런데 아뿔싸. 아직 일은 첩첩인데 개학이라? 나는 화들짝 놀란다.

여름방학 내내 손수레로 복숭아를 실어내고 선별하고 포장 박스를 접는 일에 군소리 한번 없었는데, 나는 그만 난감해진다. 고3이라는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빈둥거리는 제 형에 비해 불평 한 마디 없이 새벽 5시에도 잠을 툭 털어버리고 일어서던 모습이 오늘은 측은해 보인다.

36도를 넘나드는 오후의 폭염에도 비탈밭에서 복숭아를 운반하여 경운기에 싣던 그 능숙한 솜씨가 지금에야 고맙고 또 고맙다. “니는 마 인자사 방학이네. 좋겠다, 그쟈?” 그 말에 녀석은 묘하게 입술을 비튼다. 저 웃음. 입술을 묘하게 비트는 저 표정은 복숭아 농사꾼들의 올 여름 표정이다.

장마가 끝나고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복숭아의 단맛을 빼앗아 가더니 농민들의 고개마저 떨구어 놓았다. 지붕이 폭삭 내려앉듯 수직으로 떨어져버린 복숭아 값은 보릿고개를 넘는 달팽이 걸음이다.

흡사 우리나라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의 여론조사 수치처럼 인색하고 짜다. 그 지겹던 비도 그치고 폭음경보가 발령되도록 가물어 이젠 복숭아 맛도 제법인데 ‘값’이란 놈은 아직도 보릿고개 시절에서 놀고 있다. “오늘 작업 끝!” 누가 잡으러 오는 것도 아닌데 제 말끝을 꽁지에 달고 중3은 날다람쥐처럼 집안으로 사라진다.

아침에 농협공판장으로 보낸 15킬로그램 17상자와 생협 발주량 2킬로그램 150 상자가 오늘 작업의 전부다. 시장에 내놓을 물건은 최대한 아낀다. 내일은 오르겠지, 오르겠지 하며 장에 나간 엄마 장보따리 기다리듯 목을 뺀다. 늘 이렇다.

자린고비 밥 한술 떠 넣고 천정 굴비 쳐다보듯 나무에 달린 복숭아만 바라보며 나는 즐긴다. 이 씁쓸한 즐거움도 그나마 아직은 위안이 된다. “야야, 쌀 떨어졌다. 한 포대기 팔어 온너라. 내사 마 포대기 쌀 묵을라카이 질게 늙는다.” 생협 물건을 실어 보내고 오후 일로 잘근잘근 입술을 씹고 있는데 어머니가 작업장으로 들어서며 한 소리 하신다.

가시에 가시가 박힌 저 말을 나는 며칠째 듣고 있다. 그래도 목소리로 보아 한 이틀거리는 족히 남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또 한번 입술을 깨문다. 모를 내어야 할 일등호답에 죄다 복숭아나무 심어 놓고 쌀은 사다 먹으면서 나는 이 염천에 복숭아와의 갈등이 심각하다.

싸가지 없는 인생 하나가 반가사유상으로 턱 괴고 앉아 삶을 되질하는 풍경이 볼썽사나웠던지 작은놈이 그만 쨍, 하고 고요를 깨뜨려 놓는다. “아부지요, 오후에도 복숭 따요?” 아니, 오후는 방학! 그렇게 외치고 나는 오토바이를 몰아 우리 마을 점방 ‘녹전 카페’로 달려간다. 복숭아와 나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므로 시원한 막걸리 몇 사발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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