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위험 쇠고기, 제3국을 통해 국적을 세탁한 돼지고기, 멜라민이 함유된 중국산 식품 등으로 안전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았던 2008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지만 안전농산물에 대안은 아직도 95%가 미확인 상태에 놓여있는 현실이다.
쌀을 제외한 95%의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 아래서 안전농산물은 국민들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다. 새롭게 시작되고 있는 세계 식량전쟁시대의 블루오션으로 부각되고 있는 밀을 통해 한국의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 본다.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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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된 밀 관련 산업
미국의 밀가루 무상지원으로 생산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하던 밀은 1990년 농산물 수입자유화와 함께 값싼 수입밀이 들어오면서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1980년 2만8천ha이던 재배면적이 2007년 1천9백ha로 93% 줄었다. 생산량도 9만2천톤(80년)에서 7천톤(07년)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연간 밀 수요량은 334만톤(07년)으로 2005년(328만톤)보다 6만톤이 증가했으며, 1인당 소비량도 연간 33.7kg으로 05년(33.2kg) 보다 500g이 늘었다. 따라서 밀의 자급률은 07년 기준으로 0.21%로, 국민 5천만명 중 10만명 만이 국산밀을 먹고 있는 것으로 계산이 된다. 5천만 국민 전체를 놓고 계산하면 1인당 국산 밀 소비량은 개인별 전체 소비량(3만3천7백g) 중 7g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러나 7g에 불과한 국산밀의 점유율도 1990년의 밀 생산량과 비교하면 상당히 회복된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우리밀살리기운동의 효과 때문으로 분석된다. 90년의 밀 생산량은 0.9톤(07년 7.4톤)이었으며, 재배면적은 0.3ha(07년 1.9ha)였다.
세계 녹색혁명의 원조 - 우리나라 앉은뱅이 밀
미국 출신 농학자 보로그박사는 1970년 농학자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 말 녹색혁명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을 기아에서 구출한 공로 때문이었다.
영웅 보로그 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인도에서는 기념 우표를 발행 하였고, 멕시코에서는 국제맥류연구소 앞 대로를 ‘보로그 스트리트’라고 명명했다. 일본의 NHK 텔레비전은 “보로그 박사는 우리들에게 한 알의 종자가 세계를 바꾼다는 웅대한 낭만을 가르쳐 주었다”고 극찬했다.
당시 보로그박사가 육종한 밀은 ‘소노라’라는 품종이었다. 소노라는 작은 키에 이삭이 큰 밀로서, 그동안 잘 쓰러져 소출이 적은 큰 키의 밀 품종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품종으로 10ha당 1천4백9kg의 경이적인 수확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보통 밀의 수확량은 300kg을 넘지 못했다. 이후 학자들의 관심은 소노라를 탄생시킨 원종에 집중됐다.
소노라의 아버지는 농림10호 라는 품종이다. 농림10호는 일본인 농학박사 이나즈까 곤지로가 육성한 키가 작은 밀 품종으로, 일제시대 일본이 수집해간 우리나라 앉은 병이 밀의 아들인 달마를 개량한 후르츠달마의 후대 품종이다.
앉은뱅이밀은 지난 2006년 11월19일 풀꽃세상을위한모임(운영위원장 허정균)이 주는 풀꽃상을 수상했다. 풀꽃세상은 “우리 씨앗의 절박한 위기를 초래한 것을 스스로 반성하고, 우리 문화와 살림살이 역사를 고스란히 기억하는 씨앗에게 감사하고자 앉은뱅이밀 씨앗에게 이 상을 주게 됐다”고 밝혔다. 앉은뱅이밀을 재배 해 온 경남 남해군 아산리 오동마을 주민들이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답으로 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앉은뱅이밀이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녹색혁명의 영웅으로 활약하던 바로 그 때, 정작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선 1960년대 값싼 미국산 밀가루에 밀려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경남 남해군(오동마을)에 살아남은 것을 갖고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재배지역을 넓혀왔지만, 밀이 국내 밀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3%에 지나지 않는 현실이다.
1984년 0.04% 자급률 0.3%로 향상
5공정권 포기 후, 16년간 우리밀살리기운동 등 주효
2003년 창립 ‘우리밀농협’ 행보 주목
1984년 전두환 5공정부가 밀 수매를 중단하자 15%에 이르렀던 밀 자급률이 0.03%까지 떨어졌다. 이에 맞서 농민들은 1992년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를 만들고 정부가 포기한 종자를 다시 살려냈다. 그 결과 활동 16년만에 자급률을 10배인 0.3%까지 올려놓았다.
갈수록 안전농산물과 지역농산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국산 밀에 대한 기업체들의 참여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이와 함께 아직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밀 관련 산업에 파란불이 켜졌다. 정부도 밀의 자급률을 점차 높여나가 2012년에는 5%, 1017년에는 10%까지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밀살리기운동은 1984년 밀에 대한 정부 수매가 중단된 지 5년 후인 1989년, 경남 고성 두호마을 24농가가 1만5백평에 이르는 밀을 파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2년후인 1991년 5월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발족식을 갖고 그해 10월 전국 65개마을 25만평에 우리밀을 파종 하면서 본격적인 우리밀 생산활동에 돌입했다.
파종을 마친 이들은 그해 11월 명동성당에 모여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1천9백54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우리밀운동본부에서는 (주)우리밀사업단을 통해 직접 밀관련 제품을 생산, 공급하고 있다.
1992년에 특허출원을 한 (주)우리밀은 수매ㆍ가공ㆍ유통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우리밀종합식품회사로서 ‘안전한 우리밀 제품으로 소비자의 건강과 농가소득 증대 및 식량자급률 제고로 식량안보에 기여’하는 것을 기업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보호 밖에 있는 밀을 살리는 작업은 순탄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자체 수매였고, 수매대금은 농협에 지급보증서를 쓰고 대출을 받아 해결했다. 그러나 수입 밀과의 가격차로 수요는 따르지 않고 수매한 밀은 창고에 2∼3년 그대로 묵히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대출이자는 늘어갔고 창고보관료까지 겹치면서 IMF 구제금융사태에 우리밀 공장은 연달아 부도에 몰리고 말았다. 영농법인 협업체로 재정독립에 나선 구례공장만 살아남았다. 수매도 중단 됐다. 운동본부는 2002년 전남 구례에서 품목조합 우리밀농협 발기인대회를 개최했다. 우리밀농협을 설립하려는 가장 큰 취지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수급조절을 위해서였다.
농협은 2003년 5월 1차 창립총회를 개최한 이후 2004년 6월 3차 창립총회를 열고 김평식 조합장을 선출했다. 현재 조합원은 1천4백여명이며 인천, 광주전남, 전북, 충남대전, 대구경북, 부산, 강원 제주 등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조합원의 자격은 1천5백평 이상의 밀을 재배하는 농민이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우리밀농협은 2007년 6월 농협중앙회에 회원 농협 신청을 해 놓고 있다.
‘앉은뱅이밀’, 이제는 꽃 피울 때
아직 자급률 0.2% 불과…직불제 도입 등 대책 시급
수입밀에 열위인 가공기술 회복도 절실
전체 밀 소비량 334만톤 중에서 식용 밀 수요량은 212만톤(사료용 122만톤)으로 쌀 소비량 379만톤의 56%에 해당하는 쌀 다음의 곡물이다. 또한 사료용을 포함한 밀의 소비량은 가공용과 대북지원까지 포함한 전체 쌀 소비량 506만톤의 66%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따라서 밀은 라면, 국수, 빵, 제과 등에 사용되는 쌀 다음의 우리나라 국민들의 제 2의 주식으로서 자리매김 되어 있지만, 자급률은 0.2% 밖에 안 되는 대표적인 수입농산물이다. 밀은 기형적인 우리나라의 식량 수급 구조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작물이기도 하다.
밀의 자급률이 처음부터 낮았던 것은 아니다. 1970년에는 밀 자급률이 15.4%에 달했다. 그러나 수출주도형 경제 체제로 돈벌이에 나선 정부는 모든 기준을 당장의 경쟁력으로만 평가했다. 정부는 생산비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값싼 밀가루를 수입하면서 밀 생산에 투입됐던 인력들을 모두 공장으로 유도해 나갔다. 그 결과 농업국이던 대한민국은 점점 공업국가로 변모하면서 1994년에는 밀 자급률이 0.03%까지 떨어져 내렸다.
1970년 21만9천톤이던 밀 생산량도 급격히 떨어져 1990년에는 1천톤으로 생산량이 급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밀을 수출하던 나라들의 밀 생산량은 점점 늘어갔다. 우리나라 밀 수요량의 31.1%를 수출하고 있는 미국은 우리가 15.4%의 밀 자급률을 보이던 1970년에 3천7백만톤의 밀을 생산하다 우리나라 자급률이 0.05%로 떨어지던 1990년에는 7천5백만톤으로 생산량을 늘렸다.
2007년 현재 미국의 밀 생산량은 5천7백만톤으로 계속해서 세계 1위를 점하고 있다. 2위는 프랑스(3천5백만톤), 3위는 캐나다로 2천7백만톤의 밀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UR, WTO, FTA 등 국제적인 경제질서가 변화하고, 인류의 자연 파괴적인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석유자원마저 고갈되어 가는 상황이 도래하자 미국을 비롯한 식량 수출국들이 옥수수 등을 이용해 바이오에너지 등을 만들면서 국제곡물가가 급상승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국제곡물가 상승 움직임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학자들은 세계적인 식량 파동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 밀의 자급과 관련, 생산량만 늘리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밀 생산이 급감하면서 가공, 저장, 유통 등 관련된 모든 분야도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입밀에 비해 뒤떨어진 가공 기술 등이 회복되지 않는 한 국산 밀의 경쟁력은 회복이 어려울 수도 있다.
조직화, 규모화 되지 않은 소규모의 생산구조, 미흡한 품종 개발 및 재배기술, 품질 관리를 위한 저장과 가공 및 낙후된 유통구조 등의 문제가 함께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 밀의 자급률은 영원히 소수점 밑의 세계에서 올라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밀운동본부 관계자는 “밀은 쌀 다음으로 소비가 많은 농산물이지만 아직은 주곡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밀을 주곡으로 인정할 때만이 국가 식량산업으로서의 지위가 확보되면서 그에 걸맞는 대책이 강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밀에도 쌀처럼 직접지불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자들의 준비는 끝났다. 이제 국민들의 선택만 남았다. 앉은뱅이밀, 이젠 대한민국을 위해 꽃피울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