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끈질김과 인내심으로…

  • 입력 2009.01.12 07:13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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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 때 봉사활동으로 나가 기차줄을 만들어 보리밟기를 신나게 했던 것, 겨울방학 때 외가집에서 오빠들을 따라 소구르마를 타고 나무를 하러가서 논에 ‘사이나’라는 약을 콩속에 넣어 꿩을 잡던 기억, 이것이 나의 농촌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다.

이런 달콤한 기억으로 30을 훌쩍 넘은 나이에 농촌총각이랑 결혼을 했다. 빚이 6천만원이라는 것도 알려줬지만 그것이 삶에 어떤 무게로 와 닿을 지에 대한 감각도 없었다.

여행, 독서, 산행, 다양한 모임 등 팔자 좋은 시절 몸에 배인 생활은 몸만 굴려 열심히 일해도 먹고살기 빠듯한 농촌의 생활에서는 자질 미달의 반거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3∼4년 정도 걸렸다.

이제 아이들이 자라 초등학교 6학년과 1학년에 다니고 있다. 지역여성농민들이 뜻을 모아 어린이집을 열고, 청소년공부방을 열어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체험하며 살아가게 해 주고 싶었지만, 세상이 요구하는 유일철학에 대항하기에는 지렁이의 꿈틀거림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닌가 하는 답답함도 있는 게 사실이다.

큰 아이가 6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중학교 진학문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된다. 지역에 전교생이 20여명인 분교가 있는데, 중학교만 생각하면 부모들은 걱정이 앞선다. 농협에 갚아야할 빚도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읍에 있는 개인과외다, 영어학원이다 하며 앞다투어 보내고 있다. 지역에 있는 공부방에서는 높은 수준의 학습을 보장해 주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구 7만이 안 되는 우리지역에 농어촌자율학교가 3개나 된다. 전국이 우리 거창을 교육도시라고 일컫지만, 그 교육 도시라는 것이 바꾸어 말하면 서울대를 많이 진학하는 농촌이라는 말일게다.

얼마 전 지역에 한 여고생이 자살을 했다. 지역신문이 5개도 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누구의 탓으로 돌아갈 것인가 에만 신경을 쓴다고 한다.

자율학교가 3개나 되다보니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우수한 아이들이 많아져 지역에 있는 중학생 중에 다른 지역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하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그 대부분의 아이들이 지역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취약계층의 아이들이다.

풀어 이야기하면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조부모님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루에 서 너대 다니는 버스 시간을 맞춰 50∼100㎞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를 어떻게 다닐지….

이것이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도덕이나 양심 같은 것은 낙오자들의 변명에 불과한 것들이고, 법은 강자의 소유물이 되었다. 그래서 유달리 뉴라이트나 한나라당에서 법대로 하자는 말이 쏟아지나 보다.

인권이란 부자든 가난한 자든 가리지 않고 생명을 보호하고, 생존을 위한 기본 권리를 보장받고,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누릴 자유를 보장받는 게 아니라 부자들이 돈으로 힘자랑 하고, 권력자들이 휘두르는 권력의 자유만 보장하는 것이 인권이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살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올해로 12년째 접어드는 농촌여성으로서 새해맞이는 그 어떤 해보다 암울하기만 하다.  그러나 노약하고 병약한 시어머님의 삶에서 많은 것을 다시 추스린다. 진정한 끈질김이 무엇인지, 진정한 인내가 무엇인지. 참으로 바보같이 보였던 그 삶의 모습이 막연하게나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준다.

돈으로는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농민들은 할 수 있다. 그래서 농민들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진정한 농민이 되어가기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에 흉내만 낼 수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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