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지기 성자

  • 입력 2008.12.08 13:33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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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이야기를 하라는 자리에 걸핏하면 이렇게 생뚱맞게 문학 이야기나 하고 있으니 형님이 그 자리를 맡을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구마. 그 코너도 일 년이 넘었으니 인자 고마 쓰소. 잘못하믄 형님이 누추해지구마.”

며칠 전 시내 술집에서 만난 시 쓰는 후배가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말인즉슨 옳은 소리이지요. ‘세상 이야기’로 바꾸든지 아니면 그만 두라고 합니다. 그 신문 읽는 사람이라야 농사꾼들이 대부분인데 ‘문학’ 그 따분한 이야기를 읽도록 강요하느냐는 힐난이었지요. 그도 그럴 것이 문학이란 게 농사꾼들 귓등에는 장마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나 무엇이 다르겠으며 벙어리 발등 앓는 소리나 별반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렇거나 말거나 오늘도 기연시 또 시 한 편 꺼내놓고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추석날 해거름 무렵/조탑동 방문 앞 간이의자에 앉았다//“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2-3천 달러가 돼야 돼, 그게 알맞아/1만 달러도 많아//일본 봐라 3만 달러가 되니까/아주머니들이 고독해서 못 살잖아/심심해서 모두 배용준에게 미쳤잖아//소득 2만 달러라는/말 같잖은 소리 집어치우고/2천 달러가 알맞아” 라고/권 선생님이 말했다//나는 낮은 목소리로 그러게요 하면서/마지못해 동의했다〉

김용락 시인의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3〉 전문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권정생 선생은 아름다운 괴짜 동화작가로 유명하지요.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이듬 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지만 가난에 찌들려 전전긍긍하다가 그만 온몸이 결핵에 걸려 안동 일직면 조탑리 일직교회 종지기 성자로 정착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고 그 교회 뒤 빌뱅이 언덕에서 2007년 5월에 아름다운 생을 마쳤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몽실 언니’ 하면 사람들은 대게 아, 하고 감탄을 하게 되지요.

권정생 선생에 대한 일화는 참 많은데요, 그중 하나를 김용락 시인의 시로 말한다면 이런 것도 있습니다.
“반달의 윤석중 옹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새싹문학상을 주시겠다고/안동 조탑리 권정생 선생 댁을 방문”했답니다. “상패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선생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게/뭐 있다고 이런 상을 만들어/어른들끼리 주고 받니껴?//내사 이 상 안 받을라니더”라고 했답니다. 수녀 두 명과 윤석중 옹이 돌아간 “다음 날 이른 오전에/안동시 일직면우체국 소인이 찍힌 소포로/상패와 상금을 원래 주인에게 부쳤다”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봉화서 농사짓는 정호경 신부님/영감쟁이, 성질도 빌나다 상패는 돌려주더라도/상금은 우리끼리 나눠 쓰면 될 텐데” 라고 아쉬워 했다나요.

나라와 국민들은 3만 달러 시대가 빨리 오지 않는다고 안달을 부리고 있는데 이 괴짜 성자는 소득이 3만 달러 시대가 되면 여자들이 고독해서 못 산다고 합니다. 일본 여자들처럼 고독해서 배용준에게 미치느니보다 국민소득이 2-3천 달러가 알맞다고 넌지시 일러줍니다. 돈이 많아서 나쁠 일이야 없겠지만, 돈이 많아서 탈도 많은 일들이야 세상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아는 도시의 한 여자 분은 아침에 남편과 자식들이 집을 나서면 도대체 할 일이 없어 심심해서 못견뎌하다가 거리로 나간다고 합니다. 이른바 ‘쇼핑’병에 걸린 것입니다. 긴긴 하루를 집안에서 산다는 건 너무 큰 고통이랍니다. 어디 3만 달러 소득이 넘는 일본 아줌마들만 미쳤겠습니까. 우리나라 중산층 아줌마들도 그 이상으로 미쳐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게 다 그 놈의 ‘돈’ 때문이겠지요.

금융위기로 기업부도설이 나돌고 가계가 결단난다고 아우성인 이 시기에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권정생 선생의 말이 오히려 가슴에 와 닿습니다. 세계의 농업이 산업화되고 있는데도 수출지상주의를 외치며 농업을 희생하여 공산품을 팔아 그에 버금가는 농산물을 수입해다 먹어야 하는 도시 사람들이 제발 귀 좀 기울어야 할 금과옥조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 말을 집사람에게 해주었더니 고독해도 좋으니 우리 집도 3만 달러 버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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