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잎마름병 피해 농민 ‘분노 폭발’

[현장취재] 서천농민 0.3ha 논 갈아엎어 “우리 농업 희망 사라진다”

  • 입력 2007.08.26 20:57
  • 기자명 최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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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지난 23일 새벽 서천군민회관 앞에서는 ‘벼 갈아엎기 투쟁’을 준비하기 위한 농민들의 움직임이 분주했고, 농민들의 표정에는 어두운 그늘이 가득했다.

이날 서천군 농민들은 줄무늬 잎마름병에 걸려 수확조차 할 수 없는 벼 0.3ha 의 논을 갈아엎었다.

이들이 이날 논을 갈아 엎은 것은 줄무늬 잎마름병으로 농사를 포기해야할 지경이지만 당국에서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팔짱만 끼고 있어서이다.

논주인 최용혁 씨는 “올해 벼농사는 이제 끝이다. 이렇게 갈아엎고 나면 자식들 학비, 용돈도 줘야 하는데 무슨 돈이 있어서 줄 것이며 또 올해 농사지으려고 빌려 쓴 돈도 갚아야 하는데 소득이 없으니까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앉는 것이다.”라고 한숨을 내쉬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 트랙터 6대로 1천50평의 논을 갈아엎는 데에는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자식같이 4개월동안 키운 벼가 단 30분만에 한줌의 진흙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화양면에서 10년째 농사를 짓는 윤용호 씨 또한 같은 피해를 2ha정도 입었다고 한다.
윤 씨는 “지난해 겨울 날씨가 유난히 따뜻해서 애멸구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가 봄이 되니까 다시 활동하면서 바이러스를 옮겨 다녀 병해충이 발생한 것이니 겉으로 보기에는 애멸구가 원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상기후가 근본적인 원인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기 살을 깎아내는 고통이 뭔지 농사를 지어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고통을 조금 아니까 투쟁이라는 단어가 절박하게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벼를 갈아엎기에 앞서 이수복 전농 서천군농민회 회장은 “오늘은 서천군에 있어서 가장 비통한 날이다”고 말해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같은 피해를 입은 전북 부안군 지역 농민들도 자리에 함께 하고 오는 27일 서천지역과 같은 피해를 입은 논을 갈아엎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윽고 육중한 모습의 트랙터 여섯 대가 최 씨의 논에 들어서고 그 광경을 1백여명의 농민들이 지켜보며 안타까워했다.

논 주인인 최 씨는 스스로 논 갈아엎는 것을 포기하고 “도저히 내 새끼 같은 벼를 갈아엎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0.3ha의 논은 불과 30분만에 검은 진흙 땅으로 변했다.
평소 담배를 잘 피우지 않는다는 최 씨는 이날 3시간동안 피운 담배만 1갑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평남 씨는 “나도 1ha 정도 피해를 봤는데 이런 경우는 농사 30년 만에 처음이다. 이 모습을 보니까 이제 다 자라서 시집·장가만 보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식을 보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며 등을 돌려 버렸다.

또 다른 농민도 “벼 한톨 한톨에 담긴 농민들의 정성과 우리 농업의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네, 마치 우리나라 농업의 현실 같네 그려”라며 혀를 찼다.

〈최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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