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조직화가 한국농업 희망이다

  • 입력 2007.08.26 19:56
  • 기자명 윤병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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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병선 건국대 교수
많은 국민들의 반대 속에 강행해 온 한미FTA협상도 이제는 국회비준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정권 말에 접어든 참여정부는 국회비준에 쐐기를 박을 심산인지, 한미FTA협상을 진두지휘한 통상교섭본부장과 한미FTA 수석대표를 각각 주UN대사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대통령 스스로 “징그럽게 잘한 협상”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에 임기 말의 ‘보은인사’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미국산 수입쇠고기에서 등뼈가 발견되어 현행 수입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는 조치가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역중단이라는 낮은 수준으로 대응하다가 이 마져도 곧 풀고 말았다.

더구나 미국은 오히려 이번 일을 등뼈와 갈비 등의 수입을 금지하는 현행 규정을 바꾸는 계기로 활용하려 하니 푸줏간의 소도 웃을 노릇이다.

정부가 내 놓은 한미FTA 대응책도 농업을 살리고자 하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수입량급증으로 피해를 입은 농민에게 소득보전 직불금을 지원하고, 폐업을 희망하는 농가에게 폐업지원금을 지급한다는 게 고작이다.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력제고 지원강화라는 포장 속에는 규모화와 시설현대화 등 과거의 정권들도 실패한 농정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면서 “농지를 이용한 골프장에 대해서는 세금감면을 추진하여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서비스산업 경쟁력강화 종합대책을 내 놓고 있다.

이제 정부정책에서 농민, 농촌, 농업을 올바로 보려는 노력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고립무원, 사면초가의 한국 농업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농민 뿐만 아니라, 선진 각국의 가족농들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위기의 원인은 여러 측면에서 진단할 수 있지만, 최종소비자가 지불하는 식품구입비 중에서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몫, 이른바 푸드 달러(food dollar)의 지속적인 감소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소비자가 먹거리에 1달러를 지출할 때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7센트를 조금 넘고, 이는 포장업자에게 돌아가는 몫과 거의 같다.

이렇게 된 원인은 농업생산과정과 가공·유통과정에 거대자본이 개입함으로써 이들 자본에 의한 농업지배가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거대자본에 의해서 편제된 현재의 틀 속에서는 농업위기로부터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휴한 생산자들’, 즉 소농들의 조직화에 의한 ‘합리적인 농업’의 모색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런 가운데 녹색혁명형 농업에 대한 비판과 각성이 우리 농업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중요한, 그리고 의미 있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제안한 ‘국민농업네트워크’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농이 ‘국민농업네트워크’를 통하여 대안농업, 생태보전, 생산과 유통·소비를 아우르는 먹거리 공동체, 지역공동체의 회복 등을 꾀하려는 것은 외부자원에 의존하는 녹색혁명형 농업을 극복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실행의지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와 자원을 과소비하는 농법에 기반을 두고 있는 녹색혁명형 농업은 기본적으로 환경훼손형 농업일 뿐만 아니라, 거대자본이 지배하는 외부자원에 의존하여 이루어지는 자기수탈형 농업이기도 하다.

더구나 안전하지 못한 먹거리를 생산하기에 국민과 함께 하는 농업이 태생적으로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전농이 제시한 ‘국민과 함께 하는 농업’은 거대자본에 의해서 망가져버린 農(농민)과 食(소비자)사이의 관계를 올바르게 회복하는 농업이라고 할 수 있다.

農과 食사이의 관계를 올바르게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농업생산과 가공·유통과정에 개재되어 있던 자본의 자리를 농민스스로가 메워 나가야 한다.

외부의 자원에 의존하던 부분을 농민 스스로가 확보해야 하고, 외부의 거대자본에 빼앗겼던 가공과 유통의 상당부분도 농민들의 품으로 다시 찾아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 있는 작업도 개별화되고 파편화되어 버린 농민들에 의해서는 달성될 수 없다.

농민들이 개별화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자기가 만든 물건을 자본의 개재 없이 판매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나 ‘제휴한 생산자들’이라면 개별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마을단위로, 혹은 작목단위로 조직된 생산농가들의 협업을 통해서 지역자원의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계화와 화학화에 바탕을 둔 녹색혁명형 농업도 극복할 수 있다.

농산물의 가공과 유통도 협업참여 농가들 사이의 분담에 의해서 가능하다.

최근 전국의 각지에서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역먹거리운동, 그리고 축산농민들이 조직체를 결성하여 “얼굴이 있는 먹거리”를 통해서 소비자와 직접 교류하는 소통의 장을 넓히면서 농가소득의 증대를 꾀하는 자구노력 등에서 한국 농업의 희망을 찾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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