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성농민의 넋두리

  • 입력 2008.12.01 10:45
  • 기자명 관리자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벽녘부터 제법 많은 비가 내립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가난한 우리들에겐 차디찬 겨울바람이 더 큰 서러움이 되어 우리들 뼈 속을 파고들겠지요.

겨울의 문턱에 선 제주의 들녘은 온통 푸르고, 노랗습니다. 돌담 사이로 노랗게 익은 감귤은 수확이 한창이지만 ‘해거리’로 지난해의 반타작도 안되고, 꼬물꼬물 올라오던 마늘순은 어느새 온 밭을 다 채우고 이제 키 클 준비를 하고 있지만 내년 봄을 기약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 한경례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모두 똥값인 제주 월동채소

어른 머리통만하게 자란 양배추며, 당근, 브로콜리, 무, 감자 어느 것 할 것 없이 제주의 월동채소는 수확을 앞두고 있지만 모두가 손을 놓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모든 작물이 똥값이기 때문입니다.
당국은 생산량은 늘었는데 경기불황으로 소비까지 부진하기 때문이랍니다. 값싼 저질의 수입농산물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수확을 해봐야 인건비도 못 건질 판이니 농민들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피말리는 하루 하루가 되어 버렸습니다.  10∼11월 농한기가 되면 여성농민회에서 ‘여성농민교실’이란 이름으로 각 마을을 찾아다니며 동네 ‘삼춘’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보따리를 풀어냅니다. 제주에선 부모님 연배의 어른들을 모두 ‘삼춘’이라 부릅니다.

동네 삼춘들한테 힘도 받고 희망을 얘기하러 가지만 올해는 푸념과 걱정하는 소리만 듣고 오는 날이 대부분입니다.
“삼춘들 요즘 어떵 살암수과?”
“말도 말라 살다 살다 올해처럼 이렇게 살기 힘든 해는 없었주. 뭐하나 값 나가는게 있어야주. 내년엔 정말 어떵 살건지 막막해.”

이구동성으로 다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 안 그러겠습니까? 조금만 참고 버티자 농민이 뭉치면 세상은 반드시 바뀐다. 질기게 살아남아 농민세상에서 한번 살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매년 뻔한 소리를 올해도 하고 있는 내자신도 갑갑할 따름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결혼하고 농사지은지 꼭 16년이 다됩니다. 언제나 마이너스 농사를 지었지만 올해처럼 대책이 없어보기는 처음입니다.

결혼할 당시만 하더라도 내가 사는 곳은 제주도의 중산간마을로 드넓은 초원과 오름이 어우러져 옛날부터 목축을 업으로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집집마다 소 서너 마리 이상씩은 다 키워서 봄이 되면 100만평이나 되는 마을공동목장으로 방목하러 올려 보내지요.

목장으로 올라가는 수백마리의 긴 소떼 행렬은 누가 보아도 넉넉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하는 한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94년 UR협상으로 소값이 떨어지고 한 두집 소를 팔기 시작해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축산마을이라고 부르기엔 무색할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농민세상은 언제나 올까요

마을공동목장 반쪽도 거대한 자본에게 내주고 소들이 거닐던 들판도 골프장으로 바뀌고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재개로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더 어려워지면 남아있는 반쪽 목장마저 팔려나갈 테지요. 욕심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소 키우고, 농사만 지어도 먹고 살 걱정 없는 세상은 언제쯤이면 올까요? 정부가 나서서 농민을 보호하고 농사를 지으라고 장려하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면 내가 바보일까요?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