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밭갈이하는 농부에게’
‘땅을 밭갈이하는 농부에게’
  • 전용중 여주시농민회 사무국장
  • 승인 2008.12.01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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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옇게 가슴을 벌린 언 배추들 위로 무심한 겨울비가 내립니다. 평균 물가 상승률을 잡아낸 일등공신 치고는 대접이 말이 아닙니다.

TV와 신문에서는 어려운 경제상황에 서민들 장바구니를 가볍게 만드는 희소식이라며 호들갑을 떨지만 서민들 장바구니 가벼운 것이 어디 무, 배추 값 때문이겠습니까?

아스팔트 농사에 희망 건다

무, 배추 가격 폭락한 농민이나 장바구니를 채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는 서민들이나 가슴이 얼어붙기는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얼어붙은 가슴들이 여의도에 모였습니다.

‘쌀 목표가격 20만원으로 인상하라!’ 아직도 결정되지 않은 목숨 값, 수매가 싸움을 하다 올라온 남도의 형제들 눈에는 핏발이 확연합니다.

‘농민 생존권 쟁취하자!’ 똥값에, 냉해에 무·배추밭 뒤로 하고 올라온 강원도의 형제들은 피를 토합니다.
‘직불금 부당 수령자를 처벌하라’ 사기당한 농민, 빼앗긴 농민들의 절규와 함성이 여의도를 하루종일 뒤흔듭니다. 땅을 빼앗기고, 청춘을 빼앗긴 농민들이 다시 아스팔트 농사에 희망을 걸어 봅니다.

하지만 농민이 희망을 심고 가꾸어야 할 자리는 땅입니다. 투기꾼에게 빼앗긴 희망, 미국놈 수입농산물에 빼앗긴 희망을 찾는 길은 땅을 되찾는 길입니다.

‘경자유전’

친일파와 지주들로 구성되었다는 제헌의회에서 조차 헌법에 원칙으로 넣을 수밖에 없을 만큼 중요한 진리이지요.

‘땅은 밭갈이하는 농부에게’

흐릿한 흑백사진 속에 환하게 웃는 농부의 얼굴위로 흘려 쓴 현수막 글씨가 떠오릅니다. 그렇게 환하게 웃던 농부의 꿈은 60년 전에 이미 무너졌지요.

국민의 80% 이상이 농민이요, 그중 50%는 완전소작, 40%는 반소작인이던 시대에도 지주들의 국가적 저항 앞에서 피투성이로 절망하였지요. 그렇게 찾지 못한 농민들의 희망은 도시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농민은 전체국민의 10%도 되지 않습니다. 농민의 평균연령은 60세를 넘어 섰습니다.

여기에 한미 FTA가 국회에서 비준돼 발효되면 농민 1백만명이 떠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돌아오는 농촌. 경제발전의 밑거름으로 뼈 빠지는 저곡가 정책에 청춘을 바쳤건만 비대해진 도시는 다시 이윤 창출을 위해 마지막 남은 땅들을 빼앗으러 농촌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돌아오긴 돌아온 것입니다. 마지막 사형선고를 내리러. 전국 농지의 60% 이상이 이미 비농업인의 소유라고 합니다. 거기에 위장전입자 등 가짜농민을 합치면 그 점유율은 더 올라갈 겁니다.

 농민의 손을 떠난 땅은 그저 부동산 상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 저 비싼 땅에 돈 안되는 벼를 심는지 강부자의 명찰을 단 사람들은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비농업인의 투기성 농지매입과 직불금 부당 수령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법을 어기고도 재태크니, 부동산 경기 진작이니 헛소리를 해서는 안됩니다.  부당수령자 신고 포상금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선거사범처럼 한 50배의 과징금을 물리고 신고자에게 상금으로 주어야 합니다. 농지법은 오히려 강화되어야 합니다.

자식들이 농사지을 것도 아닌데 땅값이라도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농민이 있다면 그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농민이 없으면 공무원이라도 동원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농지가 없으면 농민이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농지 없으면 농업도 사라져

학교급식의 문제도, 식량자급률 법제화를 통한 식량주권의 문제도, 농산물 제값 받는 농가 소득의 문제도, 겨레의 식량창고를 준비하는 통일농업의 실현도 토지의 농민적 소유 없이는 모래 위에 쌓는 누각에 불과합니다.

삼모작을 할 수 있어도 식량자급이 안되는 필리핀, 흙으로 만든 빵도 살 돈이 없어 굶고 있는 아이티의 현실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농민적 의무, 국가적 의무를 상기시킵니다.

“땅을 밭갈이하는 농부에게” 

생명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진리의 구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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