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씁쓸한 초겨울 농촌 풍경화

  • 입력 2008.11.23 16:39
  • 기자명 이중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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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짐 지고 산을 타는 묘사 철이 돌아와서 무싯날에 장을 보러 갔다. 먼저 어물전부터 들러 물건을 고르고 가격을 물어보니 제법 올랐다. 가짜 조기 한 마리에 만원이란다. 올해는 돔배기 한 꼬지에 조기 한 마리만 놓기로 아예 작정을 했었다.

나는 어물전 주인이 고기를 장만하는 동안 과일가게로 갔다가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소매라고 하지만 배가 하나에 삼천원, 사과 하나 이천원이면 이건 좀 심하다. 대풍년이라 산지폐기를 해도 값이 오르지 않는다고 생산자들은 아우성인데 장사꾼들 농간에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배 세 개, 사과 세 개에 만오천원이면 배 한상자 값이다.

어물전으로 가는 길에 배추를 파는 사람에게 값을 물어보니 다듬어서 두 포기 묶은 것으로 굵은 것은 삼천원이고 작은 것은 이천 이란다.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침없이 가격을 말하는 몸빼 입은 이 아줌마 얼굴도 영락없는 도둑놈 상판으로 보인다. 장사라는 게 이문을 남길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너무 염치없는 짓거리에 자꾸 얼굴만 찡그렸다가는 말았지 말 한 마디 뱉지는 못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도권규제완화’에 반대하는 소위 지방 광역자치단체장의 반대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또 욕지기가 치밀고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삼켜버렸다. 수도권규제완화 반대에는 나도 흔쾌히 동참하는 편이지만 그러나 그들의 ‘낙동강 대운하’ 주장에는 도저히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차가 막 우리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 곳에서 좌회전을 했을 때 기사가 불쑥 말을 꺼냈다.

“00도지사 저 사람 차기 한나라당 대권후보가 되겠는기요?”

나는 또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투철한 노동운동가로 진보정당인 민중당 활동을 하다가 한나라당으로 전격 변신한 카멜레온에 대해 여기 사람들은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는 입만 열면 무조건 내가 손해를 본다. 그러나 택시 기사는 계속해서 나와 접촉을 시도한다.

“지방 출신들이 와 지 고향인 지방은 죽이고 무조건 수도권만 키울라고 저래 난리를 치면서 욕을 얻어먹는지 우리 것은 사람은 통 모리겠어요.”

지금 집권여당과 청와대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 십중팔구는 순리를 역행하는 일 뿐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문득 이제는 고인이 된 경제학자 정운영 선생이 오래 전에 쓴 글 ‘까마귀조차 웃을 짓을’ 이라는 글이 생각나서 책을 펼쳐든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대노할 남자 소매치기와 역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통곡할 여자 소매치기가 서로 의기투합하여 백년가약을 맺은 뒤 자식을 낳았는데, 가엾게도 그만 그 아이는 주먹을 펴지 못하는 불구의 손을 지니고 있었다. 그 부부는 자신들이 지은 죄의 벌이 자식에게 내린 것이라고 한참을 한탄하다가 홧김에 아기의 손가락을 억지로 잡아 벌렸더니, 아니 글쎄 그 안에서 산파의 금반지가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마침내 도씨(盜氏) 일문에 불세출의 신동이 탄생한 것이다.”

3당 야합의 부산물로 의석의 3/4을 차지하게 된 ‘민주자유당’이 26개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국회 본관이 아닌 별관 으슥한 곳에서 33초 사이에 국회부의장이 의사봉 대신 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드려 통과시켜버린 것에 대한 조롱이었다.

내가 굳이 1990년의 일을 끄집어 낸 것은 그 당시 ‘민자당’이 한나라당의 뿌리이면서 그 당시 행태로부터 발전적으로 변모해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행 해버렸다는 인상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까마귀조차 웃을 짓을’ 막무가내로 저지르고 있다. 그것들을 조목조목 밝힐 지면은 없어 그만 두고 제발 ‘한미 자유무역협정’ 만큼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농촌은 풍년으로 인한 병이 깊다. 쌀이 그렇고 모든 과일이 그러하다. ‘이게 무슨 나라냐’는 울분과 비아냥이 도처에 그득하다.

참으로 쓸쓸하고 씁쓸한 초겨울 농촌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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