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가 아니라 요설이다

  • 입력 2008.11.10 07:10
  • 기자명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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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새 콩 따먹는 소리냐. 나는 ‘한겨레 그림판’을 보다가, 읽다가 또 보다가 읽다가 ㅎㅎㅎㅎㅎ 웃어버렸다. 방바닥을 뒹굴며 미친놈처럼 웃었다. 〈나와 오바마는 철학이 닮은 꼴.〉 이렇게 우리나라 대통령의 축하 ‘개그’에 어찌 킬킬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촌철살인을 보면 ‘정곡’은 찌르는 것인지, 찔리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아메리카 미합중국 민주당이 ‘잃어버린 8년’을 외쳤는지는 아둔한 나로선 모를 일이다. 그러나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미국대통령 선거도 우리나라 지난 대선과 많이 닮았었다. 우리 유권자들이 이명박에 목숨을 걸었듯 미국 유권자들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유권자들의 ‘정곡’을 찔러버렸다. 오바마는 지켜봐야 알 일이겠지만 그러나 이명박은 불과 몇 달 만에 국민들에게 ‘정곡’을 찔려버렸다. 정곡을 찔리면 얼마나 아찔할까.

신문은 온통 ‘미국’으로 점철되어 있다. 나는 주먹만 한 글자들만 대충 읽으면서 사설이 있는 마지막 장까지 뒤적인다. 완전히 미국신문이다. 신문을 접어 구석으로 던져버린다. 나는 ‘한겨레신문’에 불만이 좀 있는 사람이다. 한겨레신문은 늘 가면을 쓰고 있다.

그래서 한겨레는 비겁하다. 당당하지 못하다. 우편으로 배달되는 모든 신문은 제 이름을 당당하게 내보이고 있는데 한겨레만은 제 이름을 숨기고 우리 집으로 온다. 이건 다분히 의도적이다. 어떤 때는 제가 안 오고 ‘ㅁ’이나 ‘ㅎ’을 대타로 보내기도 한다. 언젠가 나는 그 짓거리가 괘씸해서 딱 한번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신문 제발 좀 안으로 접지 말고 밖으로 접으라고. 그러나 그 버르장머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어쩌랴, 이게 다 ‘영남 무림’이 자처한 희극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때에도 한겨레가 이렇게 가면을 썼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담배연기 때문에 열어둔 북창으로 들어와 목덜미를 휘감으며 겨드랑이로 파고드는 바람이 제법 차다.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을 닫으려다말고 물끄러미 밖을 내다본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그러나 을씨년스럽다. 새파란 복숭아나무 이파리가 속절없이 땅바닥으로 마구 떨어져 내린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쏟아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야말로 살풍경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뭇잎들은 니힐, 니힐 자폭하는 것 같다.

단 며칠 몰아친 바람에 복숭아나무는 발가벗어버렸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잎이 떨어지는 것은 털복숭아나무이고 천도복숭아나무는 아직도 은성했던 시절 그대로이다. 무성한 잎으로 중무장하고 있는 천도복숭아나무 옆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 있는 털복숭아나무 몸뚱어리가 왠지 낯설어 작부의 그것처럼 외잡스럽게 보인다. 저년들이 미쳤나. 발정기도 아닌데 바람이 났나, 왜 저리도 못 벗어서 지랄이야? 나는 그렇게 이죽거리며 북창을 활짝 열어젖힌다.

나는 오래 그 풍경을 바라보며 저 나무가 바람에게 시달리고 있는 것인지, 어차피 줄 것 알아서 대충대충 빨리 옷을 벗어버리는 것인지 모를 좀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바람은 제국이다. 제국은 불륜을 지향한다. 바람은 종횡무진으로 미쳐 날뛰며 나무를 흔들어댄다. 달라고 했겠지. 처음에는 나무도 바람의 요구를 거절했겠지. 살짝 튕기는 앙큼한 계집처럼. 바람은 좀 더 세게 흔들었겠지. 나무는 자지러지게 엄살 섞인 비명을 질렀겠지. 이파리들이 나무를 나무라며 바람과 맞서 싸우니까 뿌리가 뽑히겠다고 지랄발광을 했겠지.

나무는 이제 살랑거리는 미풍에도 갖은 교태를 부리다가 제 흥에 겨워 삽시간에 ‘빤쭈’까지 다 벗어 던졌겠지. 그러나 모르지, 내가 술 마시러 간 밤중에 저들끼리 폭탄주를 마셨겠지. 제국은 바람둥이니까. 이건풍자가 아니라 요설이다. 농업이 요설이 된 나라, 대한민국.

너무 일찍 옷을 벗어버린 복숭아나무는 번철 위에서 지글지글 굽히고 있는, 조선 장닭이 던져놓은 똥집을 보는 것 같다. 오바마는 ‘잃어버린 미국의 권위’를 걱정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미국이 저질러 놓은 패륜과 불륜의 멍에를 오바마가 벗겨낼 수 있을까? 설마하니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일이 벌어지기야 하겠는가? 말 대가리에 뿔 솟을 리 없듯이 골수에까지 뻗쳐있는 그 유전자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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