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불금 부정수령 사태를 생각하며

  • 입력 2008.11.10 07:08
  • 기자명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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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희 김제농민회 사무국장
농부들이 흘린 땀방울에 좋은 날씨를 보태준 천지자연의 은혜로 넘치도록 풍성하였던 가을들녘이 어느새 볏짚가리만 남아 가을마저 시들게 하는 날씨처럼 쌀쌀한 빈 들녘으로 바뀌었다.

빈 들녘을 바라보며 올 가을 냄비속의 물처럼 끓어 올랐던 논농업 직불금 부정수령 파문이 다른 사건, 사고들에 파묻혀 벌써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가는 것을 떠올리며 씁쓸해진다. 저 들녘은 농부들의 마음속에 잠시의 풍성함이라도 남겼는데 그렇게 시끄럽던 직불금 문제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사실 논농업 직불금은 쌀시장 개방의 여파로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쌀값 하락이 현실화되자 농민들의 요구로 농가소득과 생산비보장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직불금 부정수령 파문은 표면적으로는 부정수령한 사람의 양심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 원인은 비농민의 농지소유가 얼마든지 가능하게 하여 농지를 투기의 대상으로 만든 농지법에 있다.

결국 직불금 부당수령 문제는 시작이 되었고 쌀 생산비와 농가소득이 보장되도록 만드는 쌀값 정책과 농민의 농지소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농지법 개정으로 해결해야 한다.

주위의 농민들은 차라리 쌀 생산비가 보장되도록 쌀값이 오르는 것이 직불금 받는 것보다 좋다고 이야기한다. 환경보전을 비롯한 논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반영한 다양한 형태의 직불금으로 농민들의 소득을 높여 준다면 모르되 단순히 쌀값하락에 대한 소득보전으로 인식되는 직불금은 이미 나타난 부당수령 문제 외에도 농촌사회에 갈등을 일으키고 분열의 상처를 남기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쌀값의 형성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쌀값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과거에는 쌀값이 서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컸지만 밥 한공기의 가격이 300원도 못 미치는 현재에는 농민들의 생산비가 보장되는 가격으로 쌀값이 형성된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부의 의지가 있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현재 직불금에 쓰이는 예산을 시장의 쌀값을 높여내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인 식량위기의 시대에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쌀농업을 지키는 일에 망설여야 할 이유가 없다.

농지법 개정의 경우 이미 농촌이 투기꾼의 마당이 되어버리고 어지간한 땅은 비농민의 소유로 넘어간 현실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겠으나 그래도 소를 계속 키울 예정이라면 소도둑의 양심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백번 현명할 것이다.

현재 직불금 부정수령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근본 문제는 외면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여 변죽을 울리고 있다. 농촌현장에서는 담당공무원들이 지적도와 직불금 수령 명부를 갖고 돌아다니며 실경작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부정수령한 사람을 한 명이라도 찾아낼 수 있을지 그저 답답하고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추수가 끝난 빈 들녘이지만 농민들의 노동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볏짚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트랙터가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한쪽에서는 보리를 갈고, 또 어떤 농민들은 벌써부터 내년 농사를 준비하며 논을 갈고 있다.

농민들이 흘리는 저 땀방울의 정직함을 우리 정부는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지 생각하면 빈 들녘에 이는 바람처럼 황량할 뿐이다.

 조경희 김제농민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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