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함에 대한 야유

  • 입력 2008.11.01 11:25
  • 기자명 이중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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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 달여 동안 신문 방송하고는 등을 돌리고 살았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세상으로부터 공급받던 전원을 꺼버린 내 정신은 갑자기 가벼워졌다. 어깨와 목이 굳어지도록 컴퓨터 자판기로 우리 말글을 두드리며 살았다. 더러 먼 곳으로 가야될 때에도 버스 안에서 1930년대 문법으로 된 글만 읽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는데 내 몸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철저하게 세상으로부터 나를 격리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휴대폰을 꺼버리고 우편함으로 신문 가지러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은폐는 될 수 있었어도 엄폐는 어려웠다. 내가 아무리 전원을 차단해도 세상은 집요하게 위치를 추적하여 ‘스팸 메일’을 날려보냈다. 아 이 지긋지긋한 스팸 메일! 나는 매일 스팸 메일로부터 치도곤을 당한다.

이명박 정권은 나에게 스팸 메일이다. 강부자, 고소영, 낙동강 대운하, 국가 봉헌, 미국 쇠고기, 촛불에 대한 테러, 재벌 편향 정책, 우 편향으로의 교과서 수정, 뻔뻔한 내각, 공안정국, 경제 위기…… 눈만 뜨면 온통 스팸, 스팸, 스팸 메일이다.

‘모세의 기적’을 바랐던 사람들은 지난 대선에서 주저 없이 이명박 후보에게 올인 했다. 경제가 되살아나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으로 데려다 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세상에 유포했던 공약들은 대부분 공수표가 되어 지금도 흩어지고 있다. 외부 요인이 아무리 크게 작용되었다 할지라도 그는 내부 단속에 너무나 소홀했으니 차라리 안하무인이었다고 하는 말이 옳을 것이다.

오늘날 이렇게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총체적 난국을 보면서 때로는 고소를 금치 못할 때가 있다. 간셈보살, 간셈보살을 중얼거려야 할 정도로 절박했던 유권자들이 품었던 환상이 결국은 절망으로 돌아오고 만 것을. 일주일을 품고 다니며 행복해했던 로또복권을 구겨 던지는 광경을 생각해보라.

왜 이명박 정권은 농업 공약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도 없는지 모르겠다. 공약 이전에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펼쳐야 할 이명박 식 농업정책 청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우스운 말이지만, 노무현 정권이 닦아놓은 것을 다 뒤집어버리는 것이 이명박 정권 아닌가. 노무현 정권의 농업정책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으니 그것 또한 뒤집어엎어 폐기해야 한다. 그래야 이명박 정권답다.

북풍이 살을 에는 시절이 왔다. 농민들은 지금 울분을 꾹꾹 억누르고 있다. 그들의 울분은 예년과 달리 긴장이 활시위처럼 팽팽해지면서 전국 곳곳 관공서 건물 앞에 나락 포대기가 쌓이기 시작하는데 그 기세가 여느 해와 사뭇 다른 것 같다.

그 잘 나가던 은행들이 휘청거리고 중산층이 무너지는데 가진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농사꾼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농사꾼은 고유가 시대를 피해가는 귀신도 아니고 수백 퍼센트 가격이 상승한 비료 대신 물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생산원가를 죽은 박정희한테 가서 따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흥청망청하다 알거지가 되었고, ‘공적자금’을 수혈 받아 간신히 살아났으나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다시 휘청거리는 은행에다 정부는 또 긴급수혈을 하기로 했다. 잘한 일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농업’에도 이런 긴급수혈을 좀 했으면 좋으련만 농업/농촌/농민을 해외동포 쯤으로 치부해버리고 안중에도 없다. 도끼날이 제 발등에 발등을 찍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지금 이 내각이 하는 행태가 꼭 그렇다.

7%에만 해당되는 종부세를 깎아주고, 2%만 부담하는 종부세를 깎아주고, 80%를 대기업이 담당하는 법인세를 깎아주어 향후 5년 동안 75조 원이 감소한다는데 그 일을 어찌할꼬. 문화체육부장관의 국감장 저질 쌍욕 파문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는 무엇을 믿고 그렇게 오만방자한가.

‘산 진 거북이 돌 진 가재’라는 말은 큰 세력을 믿고 버티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이다. 그 ‘산’과 ‘돌’이 바로 이명박 정권 아닌가. ‘가재 물 짐작하듯’이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에 있어서 예측을 잘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과거 정권에서도 드물었지만 이명박 정권에서는 약에 쓸래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 짐작도 못하는 가재’들이 한심하다. 경제 수장이 그렇고 통일 수장이 그렇고 농촌 수장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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