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 잡아 엄나무여, 잔고기 가시 세다

  • 입력 2008.10.27 07:25
  • 기자명 이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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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가뭄이 너무 심각한 이때에 ‘쌀 농업 직불금’ 문제로 여야가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꼴이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참 가관이다. 그 밥에 그 나물이 쯧쯧. 이 문제라면 우리 농사꾼들은 시행 초기에 이미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병폐를 바로잡으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으니 이른바 ‘직불금’ 제도는 태생적으로 ‘배냇병신’이었다.

5만 명이나 되는 ‘부재지주’들이 농사꾼 주머니로 들어갈 ‘직불금’에 환장을 해서 눈을 부라리며 노골적으로 빼앗아 간 작태를 보면서 나는 펄벅의 소설 〈대지〉를 떠올렸다. 메뚜기 떼가 덮친 들녘의 그 참담하고 황량한 풍경을 한번 떠올려보라. 드러난 5만 명에 많은 정치꾼과 위정자들을 더 보탠 그들은 지금까지 이 나라 남쪽 들녘을 휩쓸어 폐허로 만들어버린 메뚜기가 아니었던가. 이 신종 메뚜기를 퇴치할 살충제는 언제쯤 만들어질까.

이 나라 농사꾼들이면 가슴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기억이 하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망한다는 그 농사 말이다. 등신 같은 농사꾼들은 일 년 앞도 못 내다보는 정부의 사탕발림에 솔깃해서 그 지침서대로 농사를 지었었다. 그러자 얼마 못가 농사꾼들은 사드락병(폐결핵)에 걸린 것처럼 사들사들 말라갔다. 정부가 가지 말라는 쪽으로 간 사람들은 그래도 조금 나았다. 예컨대 어미가 자식을 천길 벼랑으로 떠민 꼴이다. 이 무슨 패륜인가. 자식이 부모를 어떻게 하는 그것만이 패륜인가.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사과, 배, 한우를 비롯한 여러 가지 품목이 정부가 목돈 들여 권장한 이른바 떠블유티오 시대에도 살아남는다는 농사였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따져본다면 살아남아 온전한 품목은 미안하지만 단 하나도 없다. 이것이 오십 년 넘게 농업정책을 펴온 나라의 농사 현실이다. 그래서 농사꾼들은 정부를 불신하여 대안을 내놓지만 정부는 ‘세계정부’의 융통성 없는 ‘과장’ 자리만 꿰차고 노닥거린다.

왜 이런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는가. 나는 그것이 무지와 무능에서 오는 ‘과잉충성’ 탓이라고 본다. 속된 말로 ‘무식하면 용감하지나 말라’는 교훈을 그들은 외면한다. 자고로 윗것들은 아랫것들의 말을 제대로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정권만 잡으면 ‘철벽’이 되어버린다.

그런 면에서 이 정권은 역대정권보다 한 수 위다. 대단한 고수다. 가능하면 입은 막고 귀는 열어 두어야 하는데 귀는 막고 입만 열어 놓으니 헛된 말의 홍수가 나라에 범람한다. 지금도 그 말의 홍수에 떠내려가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산하에 그득하다.

올 하반기에도 농사꾼들의 투쟁은 어김없이 시작될 모양이다. 정부는 이들의 투쟁을 으레 있는 ‘투정’으로 여기고 눈만 부라릴 것이 뻔하다. 농사꾼들의 바른 소리에 귀를 막아버릴 것이다. 농사만 지어서 마음놓고 자식새끼 공부시키고 부모공양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이 소박한 소리가 ‘불손’하다고 폭도로 내몰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5만 명이나 되는 그들이 무슨 자격으로 생쥐처럼 쌀농사 직접지불금을 물어갔는가 말이다. 표리부동하다. 아무리 아흔아홉을 가진 자가 아쉬워서 하나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백’을 채운다고 하지만 벼룩이 간을 꺼내 먹어도 분수가 있고 문디 콧구멍 마늘 빼먹기에도 염치가 있는 것이거늘.

말은 잘 들어야 한다. 말은 ‘아’ 다르고 ‘어’가 다르다. 아무렴 농사꾼들이 물범덩술덤벙 아무 일에나 대중없이 날뛰는 무뢰배이겠는가. 농사꾼들은 아침에 뿌려 저녁에 거두려 하지 않았고, 드리없는 농업정책에 만판 좋다고 희희낙락 휩쓸려 다니는 무지렁이가 아니다.

‘아쉬 잡아 엄나무’라고 선거철만 되면 나라의 농업을 걱정하더니 모르쇠로 돌아선 저들에게 우리라고 할 말이 왜 없겠는가. 그래서 ‘잔고기 가시 세다’는 말이 있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정부의 역사교과서 수정 요청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요청’을 ‘압력’으로 비틀어서 듣고 오랜만에 유쾌하고 상쾌해서 통쾌함을 느낀다. 그것도 이 정권이 임명한 사람으로서 ‘압력’을 거부했다니 말이다. 이 나라 농사꾼들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은 그런 ‘자존’을 가질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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