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없는 농민

  • 입력 2008.10.27 07:24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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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하다. 이제 곧 마늘을 심어야 할 때인데 논이 없다. 마늘씨는 저리 걸려 있는데…
우는 입은 하나 더 늘어 돈 들어 갈 데가 천지인데 마늘 심을 논이 없다. 내년에 돌아오는 빚도 갚아야 하는데 논이 없다.

동네 오촌 안정아재가 갑자기 중풍으로 누우셨다. 그래서 논이 났었다. 당연히 조카인 우리에게 그 논을 부쳐 먹으라고 하실 줄 알았다. 근데 논은 다른 사람에게로 가버렸다. 다 뻑뻑한(?) 남편 탓이다. 셈이 빠른 안정 아지매는 울 남편에게 묻드라는 것이다.

“직불금은 내 주고 논 붙일라면 붙쳐라”
“아지매요, 직불금은 농사 직접 짓는 사람에게 주는 거시더. 그럴려면 아지매가 농사 직접 지으소.” 라며 일언지하에 잘랐단다. 안 그래도 논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 천지인데 당연히 안정 아지매는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 논을 주어버렸다.

요즘 연일 TV에서 터져 나오는 직불금 뉴스를 접하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안정아지매는 저런 뉴스 보면서 어떤 생각 드실까?’
직불금이 나오면서 농촌사회는 시끄러워졌다. 직불금 때문에 논임자와 붙이는 사람사이에 실랑이가 오고 갔다. 직불금을 논임자에게 주든지 아니면 소작료를 직불금만큼 더 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논 붙이는 사람이 여럿 바뀌기도 했다. 땅 없는 사람은 그 직불금이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논 주인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직불금이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 법이 정해 졌어도 실상 그것 때문에 농사 직접 짓는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법이 되고 말았다.

안정아지매 같은 사람들이야 진짜로 그 직불금이 탐나 그러시지만, 뉴스에 나오는 고위공직자들이 그 직불금을 타 먹는다는 것이 처음에는 언뜻 이해가 안 갔다. 벼룩이 간을 빼 먹지, 그 직불금을 가로채 나 싶었다. 근데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양도세가 문제였다.

직불금을 타 먹으면 직접 농사짓는 것이 되어 나중에 땅을 팔 때 양도세를 안 내도 된다는 것이다. 있는 자는 없는 자를 착취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직불금 부당수령에 대해 문제에 핵심을 흐리고 있다. 민중을 기만하고 약탈을 일삼는 자들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농민이 농사만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세상이 올까? 평등한 변혁사회가 내생에 왔으면 좋겠다. 정말 멋진 법이다. 직불금 타먹지, 땅 팔 때는 몇천만원 되는 양도세 안내도 되지, 누구를 위한 법인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요즘 우리 마을 이장님의 얼굴빛이 어둡다. 직불금을 신청하려면 이장님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불법신청을 이장님은 훤히 아신다. 그러나 논임자와 붙이는 사람 사이에 그리 이야기가 됐다고 고집을 부리면 이장님도 어쩌지를 못 하신다.

이장들의 양심고백이 있어야 한다. 같이 농사를 짓고 사는 이장들이 올바른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이장들 선에서 불법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직불금 때문에 농촌사회는 더 팍팍해졌다. 안 그래도 온갖 농자재 물가는 연일 올라도 농산물값은 내려가는 처지에 농민들 똥줄이 다 탄다. 제발 빈다. 이번에는 빈틈없는 법을 만들어 땅 없는 농민들도 맘 편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황정미 경북 의성군 봉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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