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주요 국가들은 도시권 대기오염 대응책의 일환으로 전기차를 판매하는 제조사에 대량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 덕에 소비자는 정상가격보다 큰 폭의 할인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운행하는 동안 각종 세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정부가 전기차 구매에 지원하는 금액은 대당 1,000만원을 넘고, 매년 면제받는 자동차세의 규모도 내연기관 차량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굉장한 수준으로,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정책적 혜택 가운데서는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이다.
기본적으론 아직 상용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전기차의 비싼 가격 때문이지만, 결국은 무리해서라도 전기차 보급을 서둘러야 할 만큼 환경오염의 심각성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각국의 이 같은 정책에 힘입어 전기차의 보급은 세간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됐으며, 제조사들은 내연기관 개발을 일찌감치 중단하는 등 자동차 산업 자체의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정책이 산업 전환을 주도한 사례를 보면 자연히 농업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농민에게 우리보다 훨씬 많이 직접 지불하는 것을 넘어 농업의 ‘전환’에도 대폭 투자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일부 국가들은 한 가지 이와 비슷한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관행적 농장을 유기농업 농장으로 전환하는 비용 혹은 그 유지에 대한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게 바로 그 예다. 농업의 탄소배출량 감소를 위해선 친환경 농업의 확대가 불가피한 가운데, 막대한 전환 비용 그리고 유례없는 기후위기 속에 더더욱 영농이 어려워진 친환경 농사를 국가 지원 없이 시도·유지하기 어렵다는 농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모든 유기농지에 대해 ha당 30만원 넘게 추가 지원한 결과, 지난 2021년 유기농지의 비율이 25%를 넘은 오스트리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런 유럽에서 올해부터 새 공동농업정책(CAP)이 추진된다. 새 CAP의 추진배경은 지난 2019년 처음으로 제안된 유럽연합(EU)의 신성장 전략 ‘EU 그린 딜’의 기조·목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순환경제’,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 대륙(2050년까지)’을 표방하는 EU 그린딜은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유럽 대륙 내 전 산업과 부문에 걸쳐 다양한 핵심과제를 내놓았다.
기후위기 담론이 세상을 지배한 듯한 오늘, 이를 크게 의식했다고 자부했던 CAP는 올해 종전 수준보다도 더 진보했을까? 의외로 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물론 이 지역의 각국은 여전히 우리보다 더 많은 비중의 예산을 농업에 투입하고 있으며, 재분배와 친환경을 위한 예산의 명목상 비중도 커졌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중소농과 청년을 보호하며 유기농업의 비중을 늘리기 위한 획기적인 시도를 못 박는 덴 크게 진전이 없었다. 딱히 퇴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결과를 접한 뒤 만족한 이들이 ‘현상 유지’를 거듭 외치고 있는 만큼 적어도 제자리걸음에 가깝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한편으론 여전히 CAP의 ‘진보’를 위해 애쓰는 이들의 목소리 역시 작지 않다.
CAP는 직접지불제도를 비롯한 다양한 농정을 선구적으로 실시했으며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따라서 그 내용과 효과를 농민들에게 알리는 것 또한 우리 농정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 믿는 바, 얼마 전부터 적용된 새 CAP의 주요 내용이 갖는 의미와 한계에 대해 가볍게 들여다본다. 향후 축산 등 세부 전문 분야의 쟁점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