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산에 오르다(1)

  • 입력 2008.09.30 18:37
  • 기자명 이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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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산소를 지나 솔숲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꿩 한 마리가 허공에다 비명을 흩뿌리며 튀어 오른다. 장끼다. 꿩! 이 녀석은 제 이름을 불러 오래 적막한 산을 흔들어 놓는다. 산탄처럼 흩어지는 그 소리가 우수수 내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가만가만 솔숲으로 들어간다.

온몸의 신경을 집중시켜 땅바닥을 살펴나간다. 내 눈은 탐조등 같이 번쩍거린다. 그러나 쌓인 솔잎을 뚫고 올라오는 송이는 전혀 내 눈에 잡히지를 않는다. 산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훨씬 지났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날카롭게 곤두세웠던 신경이 허물어져 내린다. 삼십 도에 육박하는 가을 더위는 상의를 흠뻑 적셔놓았다. 나는 발뒤꿈치를 내리고 건성건성 바닥을 살피며 비탈을 올라간다.

이 산은 스물 몇 살의 아버지가 콩 다섯 말을 주고 샀다고 한다. 7대 주손이었지만 선산이 없었던 젊은 아버지는 청송이며 죽장 등지에 흩어져 있는 조상들을 이 산으로 모시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셨다. 원래 이 산에는 송이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륙 년 전부터 송이가 나기 시작한 것을 우연히 아우가 알게 되었다.

“날이 너무 가물어서 올게 송이는 접었구마. 고만 내려 가시더.” 아우는 갓재 꼭대기에 먼저 와 있었다. 비틀리고 구부러진 소나무 아래 앉은 아우의 손이 송이 세 뿌리를 들고 있다. 나는 그것을 황홀하게 바라본다.

“아무리 살펴도 내 눈에는 안 보이던데 니는 우예 찾았노? 그것 참, 희한하네.”

아우는 빙그레 웃더니 송이 한 뿌리를 바지에 쓱쓱 문질러서는 찢어 그 반을 내밀며 질겅질겅 씹는다. 그러면서 심마니처럼 이죽거렸다.

 “개 눈에는 똥밖에 안 보이는데 그거야 당연하지요.”
“그라믄, 내가 올라왔던 쪽을 니가 내려가면서 한번 다시 살펴봐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구마. 형님은 바로 집으로 내려가소.”

나는 아우가 건넨 송이를 다시 반으로 쪼개 입에 넣는다. 그처럼 좋은 향을 가진 송이도 날것으로 씹으니까 비릿하다. 나는 아주 천천히 그것을 꼭꼭 씹어 삼킨다. 울컥, 토악질이 올라 올 것 같다. 나는 손에 쥔 송이를 이윽히 내려다보며 이것에게서 ‘향’을 제거 해버린다면 얼마만큼의 영양가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일자무식인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송이에게는 ‘향’이 생명이라는 결론이다.

아우는 내가 밟아왔던 곳을 되짚어 내려가고 나는 갓재 꼭대기에서 이윽히 마을을 내려다본다. 이 자리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것이 삼십 년이 훨씬 넘었다. 흡사 우리나라 지도를 빼닮았던 마을의 형태는 많이 바뀌어져 있다. 함경도 같은 마을 윗각단 쪽은 집들이 많이 사라지고 남도 같은 아랫각단으로는 양옥들이 엄청 들어서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백 수십 호가 살았던 마을은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오십여 호로 줄었다가 근래에 와서 도시 사람들이 땅을 사 들어오면서 칠십여 호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래봤자 그들은 노후를 즐기는 늙은이들이고 젊은이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씨가 말라버렸다. 대부분의 토지는 도시 사람들에게 팔려나갔고 마을 사람들은 소작인이 되었다.

동쪽으로 등을 돌리면 ‘달본산’이 이마에 와 걸린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정월대보름이면 그 산 꼭대기에 가서 달을 본(보는) 산이라고 해서 예로부터 부쳐진 이름일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못으로 구멍을 숭숭 뚫은 깡통을 하나씩 들고 형들을 따라 ‘달본산’으로 올라가 소나무 가지를 꺾어 거대한 달집을 만들었다.

동네 형들은 이웃 동네 친구들과 달집 태우는 연기를 많이 피워 올리는 내기를 걸었다며 초등학교도 못 들어간 아이들에게까지 생솔가지 나르는 일을 닦달했다. 달집 바닥에는 삭정이와 마른 등걸을 놓고 그 위에 생솔을 최대한 많이 올려야 짚동 같은 연기가 치솟아 오른다.

달이 뜨기 한참 전에 어느 한 곳에서 먼저 연기가 오르면 여기저기에서 잇따라 신호를 받은 봉수대처럼 다투어 연기를 말아 올렸다. 그러면 꼬마들은 일제히 깡통에 불씨를 담아 빙글빙글 돌리며 괴성을 질러댔다. 어느 해는 바람이 몹시 불어 달집에서 날아간 불씨가 민둥산을 다 태워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듣지 않았고 지서에 불려가 문초를 받는 일도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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