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 이야기하자

  • 입력 2022.03.27 18:00
  • 기자명 김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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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한결 기자]

“가위바위보”, ‘똥통’을 치우는 이는 그렇게 결정됐다. 지난 23일 전남 강진군 도암면 늦봄문익환학교에서 생태화장실 청소에 나선 생태부 부원들이 대변을 받아내는 통에 톱밥과 재를 채운 뒤 다시 화장실로 밀어넣고 있다. 오른쪽에 설치된 시설물은 대변을 퇴비로 만드는 발효실이다. 한승호 기자
“가위바위보”, ‘똥통’을 치우는 이는 그렇게 결정됐다. 지난 23일 전남 강진군 도암면 늦봄문익환학교에서 생태화장실 청소에 나선 생태부 부원들이 대변을 받아내는 통에 톱밥과 재를 채운 뒤 다시 화장실로 밀어넣고 있다. 오른쪽에 설치된 시설물은 대변을 퇴비로 만드는 발효실이다. 한승호 기자

‘당신의 똥은 거름이 된다.’

전라남도 강진의 작은 학교에서 만난 생태화장실에 쓰여있던 문장이다. 맞다. 싸고 물을 내려 흘려보내면 더이상 보지도 생각하지도 않아도 됐던 똥을 굳이 끄집어내 얘기해보려 한다.

자신이 싼 똥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 위에 재나 톱밥을 뿌리는 건 꽤나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똥이 거름이 되고 밥이 된 후 다시 흙으로 되돌아가는 건 무척 자연스러운 생태계 순환의 원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 농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전통 뒷간이 있다.

화학비료나 농약이 없던 시절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거름을 직접 만들어 써야 했다. 그때는 똥이 지금처럼 냄새나고 더러운 것, 보이지 않게 처리해야 할 음지의 것이 아니라 더없이 귀한 자원이었다. 똥을 받아 직접 만들어 뿌린 퇴비는 땅을 오염시킬 리 없었다.

재앙은 산업화와 함께 시작됐다. 도시화된 현대사회는 과도한 편리함을 추구했고 개발과 성장이 이뤄지면서 상하수도가 보급됐다. 서양에서 수세식 화장실이 들어오면서 똥과 밥은 완벽히 단절됐다. 똥이 흘러가는 하천이 오염되지 않게 정화·분뇨처리 하는 데만 해도 막대한 돈이 투입됐고 동시에 화학비료와 농약이 땅을 뒤덮기 시작했다.

<자연을 꿈꾸는 뒷간>에서 저자 이동범은 “수세식 화장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음식과 똥의 생태순환 구조를 끊어놓음으로써 똥이 자원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쓰레기로 취급되는 데에 있다”라면서 “환경오염과 자원의 고갈 현상이 심각한 현 상황에서 어떠한 화장실 형태가 미래의 대안이 될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 조상들이 써왔던 전통 뒷간처럼 생태순환적 원리를 이용한 화장실일 것이다”고 밝혔다.

생태위기와 바른 먹거리를 공부하면서 농사와 살림을 배우는 늦봄문익환학교에서 똥은 그저 물에 흘려보내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텃밭에서 똥은 아이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훌륭한 퇴비가 된다.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생태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회의시간에는 생태화장실 사용을 독려하기 위해 ‘억지로 싸게 한다’부터 ‘여름, 겨울처럼 (추워서) 똥을 잘 안 싸는 시기에 보너스를 주자’거나 ‘그래피티 등으로 생태화장실을 꾸미자’, ‘신입생들을 위해 생태교육을 하자’까지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었다.

똥을 푸는 현장은 톱밥에 미처 파묻히지 못한 ‘큰 것’의 자태를 발견한 아이의 비명소리(?)와 왁자지껄한 웃음, 활기로 가득했다. 똥을 모아 거름을 만드는 생태부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부서다. 생태부에 가입하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줄을 섰다. 생태부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똥에 재를 뿌리고, 오줌을 모으는 깔때기를 교체하고, 꽉 찬 변소통을 퇴비장에 퍼 나르고, 발효시키고 톱밥을 채워 넣는다.

지구 생태계 오염이 심각한 시대, 생태순환의 가치에 공감해 세계에선 똥을 재활용하는 뒷간의 원리를 주목하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어렵다면 똥이 아니어도 좋다. 도시에서도 음식물쓰레기를 이용해 퇴비를 만드는 작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생태화장실과 음식물 퇴비통을 만들어 도시농장에 보급하고 있는 안철환 온순환협동조합 이사장은 “축분기술 등 대형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하고 있지만 그건 흙을 살리는 해법이 아니에요.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퇴비를 안 만들어요”라며 “나만 갖고 안 돼요. 퇴비를 생활화하는 시도들이 일상에서 더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고 말했다.

오염된 토양을 살리는 데 똥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우리, 다시 ‘똥’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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