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위의 ‘가위질’, 시민 힘으로 통제해야

  • 입력 2022.03.13 18:00
  • 수정 2022.03.13 19:4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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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해 7월 5일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GMO반대전국행동 주최로 열린 ‘산자부의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 입법 반대’ 기자회견.
지난해 7월 5일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GMO반대전국행동 주최로 열린 ‘산자부의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 입법 반대’ 기자회견.

유전자조작 농·축·수산물(GMO) 관련 규제완화를 시도하다가 농민·시민사회의 반발로 한발 물러섰던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문승욱, 산자부)가 다시금 유전자가위 기술 등 GM 기술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려 한다.

법제처의 2022년도 정부입법계획에 따르면, 산자부는 오는 5월 국회에「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GMO법, 일반적으로 LMO법이라 칭하나 본지에선 GMO법으로 칭함)」개정안을 제출해 통과시키고자 한다. 산자부가 GMO법에서 개정하려는 내용 중 핵심은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한 각종 승인절차의 면제사항을 넣는 것이다.

산자부는 ‘유전자가위 산물 시장 확대 및 관련 연구 활성화’를 위한 환경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해 처음 개정안을 내밀 때부터 산자부는 “산업계·학계에선 유전자가위 산물이 기존 GMO에 비해 안전하다는 것을 근거로 규제 완화를 요청하고 있다”며 “미국에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규제 완화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고 밝혔다.

GMO를 연구·개발하는 생명공학·농식품 기업 및 적지 않은 과학계 인사들도 산자부 말마따나 줄기차게 GMO 규제완화를 주장해 왔다. 그들은 ‘세계 추세’가 유전자가위 기술을 GMO 영역에서 제외하고 GMO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라며 산자부를 압박한다.

문제는 과학계와 기업 측이 시민들과 GMO 문제에 대해 상시 소통하며 저 이야기를 한다면 모를까, 규제완화 문제를 거론하는 GMO 반대 시민사회 측에 “한국 공교육에서 과학교육이 성공적이지 않았다”거나 “과학이 아닌 ‘미신’을 기반으로 한 우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식의 조롱·훈계를 일삼아왔다는 점이다. 해당 발언들은 실제로 지난해 6월 29일 산자부 주최 GMO법 개정안 관련 공청회에서 업계·학계 측 인사들이 GMO반대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했던 발언이다.

업계와 학계가 이야기하는 ‘세계 추세’는 표본도 충분치 않다. 미국·일본·호주·아르헨티나처럼 ‘유전자가위 기술은 GM 기술이 아니다’라며 규제를 완화한 나라들(모두 GMO 생산국들이다)이 있는가 하면, 유럽연합(EU) 국가들처럼 내부 논쟁은 있을지언정 유전자가위 기술을 GM 기술로 규정하는 나라들도 많다.

상술했듯, 한국 정부가 GMO 규제완화를 하려는 이유 중엔 ‘GMO 규제완화 필요성 제기’라는 미국의 은근한 압력이 있었다. 그러나 현행 GMO법의 GMO 위해성 심사절차 관련 내용은 GMO 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문제에 대한 국제협약인 「바이오안전성에 관한 카르타헤나의정서(카르타헤나의정서)」 협약 내용에 따라 마련된 내용으로, 미국은 카르타헤나의정서 미가입국인 반면 한국은 가입국이기에 미국이 압력을 넣을 명분이 없다.

유전자가위 기술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학계·기업계 인사들은 유전자가위 기술이 기존 GMO 개발 방식에 비해 안전하다고 한다. 외부 유전자를 생물에 인위적으로 결합시키지 않고, 생물 자체적으로 소유한 유전체에서 필요한 부위를 잘라 생물에 변화를 일으키므로 안전하다는 것이다.

유전자가위 기술도 종류가 다양한데, 그중 ‘대세’는 2020년 미국의 제니퍼 다우드나와 프랑스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라는 두 과학자에게 노벨화학상을 안긴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 기술이다. 그러나 이 기술도 100% 안전한 기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게 ‘표적이탈(Off-target)’ 문제다. 표적이탈이란 처음 유전체를 가위질할 때 당초 목표로 삼지 않은 부위에서 유전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2019년 중국과학원 신경과학연구소의 과학자들은 크리스퍼 캐스나인(CRISPR-Cas9) 기술에 기반한 단일염기 유전자편집 과정에서 실험 대상인 생쥐 배아에게 표적 외 돌연변이가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크리스퍼 캐스나인은 간단하고 정확한 기술이지만, 유전자편집 과정에서 표적 위치를 벗어나 오류를 유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임상에 부주의하게 적용할 시 암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게 연구진의 입장이었다.

그 밖에도 우려되는 문제로는 △비의도적 적중(unintended on-target)으로 원하는 부위를 편집했음에도 유전적 오류가 발생해 잘못된 단백질이 생성될 가능성 △유전체 편집 후 삽입된 DNA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게 될 가능성 △목표로 한 유전자 이외에 근처의 염기서열에도 영향을 주는 부작용인 ‘모자이크 현상’ 등이 거론된다.

물론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의 문제점들을 점차 교정해 가고 있다는 보고가 과학계에서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위 문제들의 발생 확률이 0%가 된 것은 아니다. 만약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해 모든 빗장을 풀 시, 상대적으로 연구역량과 기술력, 도덕성이 부족한 사람들에 의해 어떤 과학적·도덕적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안전성 및 도덕성 결여 문제의 극단을 보여준 사례가 2018년 중국의 과학자 허젠쿠이가 크리스퍼 유전자기술로 세계 첫 ‘유전자편집 아기(크리스퍼 베이비)’를 탄생시킨 사건이다. 허젠쿠이는 유전자가위 기술로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아기’를 탄생시켰는데, 문제는 이 아기가 일반 유전자를 가진 아기들에 비해 사망률이 21%나 높다는 연구결과가 2019년 6월 의료과학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됐다는 것이다.

국내의 대표적 생명공학·생명윤리 전문가인 전방욱 강릉원주대 교수는 저서 <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정밀성의 신화’와 관련해 “방법이 정확하므로 결과도 정확할 것이라는 오해를 하게 한다”며 “살충제로부터 유전공학에 이르는 지난 70년간의 모든 화학적·생물학적 기술이 이런 정밀성과 특이성의 신화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우리는 DDT·납 페인트·고엽제·아트라진·C8·석면·클로르덴·폴리염화비페닐 등이 건강과 환경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쳤는지 이제야 깨닫고 있으며 정밀성에 기반한 신화의 붕괴를 목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밀성의 신화’를 탈피해, 유전자가위 기술을 비롯한 GMO 기술이 만에 하나라도 잉태하게 될 부작용 또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신규 유전자공학 기술에 대한 규제는 오히려 더 강화돼야 한다는 게 GMO 문제를 고민하는 시민들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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