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치즈 넘쳐나는 국내서 ‘느리게’ 만든 치즈로 우뚝서다

‘자연의 맛’ 담은 숙성치즈 생산하는 이선애씨
체험목장 병행하며 건강한 먹거리 알리려 힘써

  • 입력 2022.02.27 18:00
  • 수정 2022.02.27 18:29
  • 기자명 서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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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서형우 기자]

효율성과 경쟁력이 강조되는 사회. 식품기업들은 대규모 설비를 갖추고 제조 과정에서 각종 첨가제를 넣는 등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국내 치즈 산업에서도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국내 치즈 생산량은 2014년 2만3,779톤에서 3만7,322톤으로 증가했는데, 이 중 자연치즈는 같은 기간 8,582톤에서 3,507톤으로 59.1% 감소한 데 반해, 가공치즈는 1만5,197톤에서 3만3,815톤으로 122.5% 증가했다. 실제로 가공치즈는 자연치즈에서 나온 유고형분 성분을 18%만 함유하면 돼 진짜 치즈라 하기 어렵지만, 생산 시 투자비용이 적게 들고 대량생산이 가능해 기업들이 선호한다.

이를 의식해서일까. 지난해 12월 31일 슬로푸드문화원은 ‘참발효어워즈2022’ 23점을 발표했는데, 이번에는 작년과 다르게 국내산 목장치즈 부문이 추가됐다. 이 부문에서 출품된 치즈 중 총 6점이 선정됐다. 모두 속도의 휩쓸림에 굴하지 않고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이들이 만드는 치즈다. ‘썬러브치즈’를 운영하는 이선애씨의 고다치즈도 이중 하나로 뽑혔다. 이씨는 ‘효덕목장’을 소유한 지금의 남편 김호기씨를 만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치즈 생산에 뛰어든 치즈 장인이다.

‘썬러브치즈’를 운영하는 이선애씨가 반경성치즈 고다 휠을 들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썬러브치즈’를 운영하는 이선애씨가 반경성치즈 고다 휠을 들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슬로푸드라는 이름에 가장 적합한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치즈예요. 공정 하나 하나에 들어가는 품은 우리네 간장이나 고추장에 뒤지지 않거든요. 특히나 발효기간이 긴 숙성치즈라면 더더욱.”

주력치즈는 네덜란드의 반경성치즈인 ‘고다치즈’와 외피에 흰 곰팡이가 핀 ‘까망베르치즈’지만, 이씨는 그밖에도 다양한 치즈를 생산하며 작은 공방의 활기를 더했다. 벽돌같은 틀에 커드를 넣어 굳힌 ‘숙성 체더치즈’나 하트 모양의 ‘하트 까망베르치즈’는 그 독특한 생김새에 눈이 간다.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호두 고다치즈’·‘구기자 아시아고치즈’ 등 지역색이 물씬 풍기는 치즈도 별미 중에 별미다.

단순히 종류만 다양한 게 아니다. 언제, 어디서 먹든 같은 맛을 내는 ‘미국식 가공치즈’와는 달리 이씨의 치즈는 같은 종류라도 숙성 정도에 따라, 온도에 따라 맛과 식감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주력 치즈인 고다치즈의 경우 ‘7개월 이상 숙성’을 원칙으로 하지만, 경우에 따라 길게는 2년, 심지어 30개월을 넘기기도 한다. 숙성이 오래될수록 조직감은 단단해지고 감칠맛은 더욱 살아난다. 1개월밖에 안 된 고다치즈는 조직이 무르고 맛도 굉장히 순하지만, 2년을 넘기면서 조직감은 수분 증발로 인해 자르기도 힘들 정도로 단단해지고 맛은 그만큼 응축된다.

먹기 좋은 온도도 따로 있다. 온도가 너무 낮으면 유지방이 결집돼 치즈가 고무같은 질감을 내지만 먹기 몇 분 전 상온에다 놔두면 유지방이 풀어져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더욱이 상온에서는 균 활동이 활발해 그에 따라 맛과 향이 올라가기도 한다. 이씨는 이와 같은 균 활동을 중시하기 때문에 치즈를 제조할 때는 63도에서 30분간 살균시키는 ‘저온 살균법’을 채택한다. 72도에서 15초간 살균하는 고온살균의 경우 좋은 균까지도 제거해 제대로 된 풍미의 치즈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좋은 치즈 만들기 위해 ‘정직한’ 원유 생산에 주력

그렇다면 ‘유럽식 숙성치즈’와는 차별점이 없을까.

우선 규모화·기계화가 어느정도 진전된 상태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유럽식 숙성치즈와는 달리, 이씨의 치즈는 소규모 가내 수공업으로 생산된다. 즉 여타 수입산 치즈에 비해 ‘손맛’을 많이 타는 편이다. 정해진 레시피는 있지만, 기계가 아닌 사람이 만들다 보니 정확하진 않다. 대량생산돼 획일화된 ‘장맛’과 할머니들이 집에서 담그는 ‘장맛’이 다르듯, 이씨는 비록 소규모긴 하지만 기계의 힘을 최대한 빌리지 않고 하나 하나 관리를 해가며 그렇게 치즈를 만들어왔다.

무엇보다 이씨의 치즈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치즈 생산에 필요한 대부분의 재료를 본인의 농장에서 직접 공수한다는 점이다. 우유는 100% 효덕목장산 우유만 쓰며 소 사료는 일부 외부에서 끌어다 쓰기도 하지만 상당량은 직접 농사를 짓는다. 계절마다 소에게 주는 먹이도 다른데, 봄에는 청보리와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여름에는 피, 가을에는 연맥을 준다. 소 사료를 만들 때는 한 가지 기교가 더해진다. 커다란 통에 수확한 풀과 유산균을 함께 담아 발효시킨다. 이 과정에서 ‘유익균’이 생성되는데, 그걸 부드럽게 찌는 것이다.

이씨가 우유 한 잔을 건넸다. 아직 정식으로 상품화가 되지 않아 그 흔한 라벨 하나 붙어있지 않았지만, 맛은 대량생산되는 다른 우유와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치즈에서나 느낄만한 고소한 풍미와 부드러운 감칠맛이 입안을 기분좋게 감쌌다. 이씨는 “다른 우유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향이 있다더라”며 효덕목장의 우유를 맛본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전했다.

숙성고에는 숙성 중인 자연치즈들이 매대를 장식하고 있다. 고다치즈의 경우 7개월 숙성을 원칙으로 하지만 경우에 따라 2년을 넘기기도 한다.
숙성고에는 숙성 중인 자연치즈들이 매대를 장식하고 있다. 고다치즈의 경우 7개월 숙성을 원칙으로 하지만 경우에 따라 2년을 넘기기도 한다.

농의 가치 전달하기 위한 식교육 중요

거자일소(去者日疎),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다. 요즘의 도시인들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매일같이 음식을 먹어도 그 음식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알기 힘들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도시와 농촌 간의 거리가 더욱 멀어졌기 때문이다. 식품산업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는데도, 정작 그 토대가 되는 농업은 이제 소비자들에게 관심 밖의 대상이 됐다.

그런 점에서 이씨가 진행하는 식교육 프로그램은 의미가 깊다. 이씨는 효덕목장에서 치즈 생산과 더불어 체험교육목장을 병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제품 홍보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농업에 무관심한 참가자들을 만나면서 차차 농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됐다. 치즈·피자 만들기 및 동물 먹이주기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토대로, 이씨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게 되는지 사람들과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람들이 농업을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뭐가 좋은 건지 모르고 자꾸 가공식품만 찾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농사짓는 분들이 많아요. 특히 밀 같은 경우는 자급률이 1%도 안돼서 생산자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이러한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이들의 농사는 지속될 수 없어요.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먹거리 교육은 계속 이뤄져야 하죠.”

슬로푸드는 단순히 ‘느리게 먹는 음식’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안에 굉장히 많은 이야깃거리와 정체성이 담겨 있다. 이씨의 언급처럼, 슬로푸드에서는 음식의 출처가 중요하다. 식재료가 나온 곳에는 그 지역의 지역성이 드러나고, 식재료를 만든 곳에는 만든이의 손맛이 담긴다.

이씨는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생태적인 관점 아래 좋은 치즈를 만들기 위해서 토양의 비옥도에 주목한다. 또 생산 과정은 소규모로 진행되기 때문에 기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더군다나 이씨는 자신의 이런 철학을 농촌에서 떨어져 사는 도시인들에게 교육으로서 전달하기도 한다.

생산성과 효율성 위주의 패스트푸드가 판을 치는 세상. 이씨는 한 땀 한 땀 공들여 치즈를 만들고 ‘느림’의 가치를 사람들과 공유하며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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