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세계곡물시장을 뒤흔들던 투기자본이 달러화의 가치상승으로 상품시장에서 이익을 챙겨 빠져 나가면서 꺾일 줄 모르던 곡물가격의 상승세가 다소 주춤한 상황이다.
그러나 달러화의 가치상승이 미국경제의 건전성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다른 한편 달러화의 가치상승(환율인상)은 수입곡물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식량자급률이 OECD국가중 최하위그룹에 속하는 우리로서는 일시적인 세계곡물가격의 하락을 반갑게만 받아들일 수 없다.
식량 안정적 확보방안 고민해야
더욱이 세계곡물시장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불안정성을 고려한다면 이제라도 차분히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에 대하여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올 봄 신정부는 농정방향과 식량위기대책을 내 놓았지만 우리한국의 농업과 농촌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정책이었기에 이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경제부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농업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농산업·농기업 육성정책으로 가자”고 했던 이야기나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카길과 같은 농식품복합체를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신문보도를 접하면서 과연 신정부가 농업문제를 올바르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낳았다.
식량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대통령이 미국행 비행기에서 밝힌 해외식량기지개발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신호탄으로 국내생산기반을 확충하여 자급력을 높이려는 의지보다는 소나기를 피해보자는 심산으로 임기응변식의 해외농업기지개발이 화두로 등장했다.
해외의 농업생산기지에서 생산이 이루어져서 그것이 국내로 들여오기 위해서는 농업생산기반시설 뿐만 아니라 저장 및 가공시설 등 인프라의 구축이라는 중요한 장애를 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식량위기 시에 곡물수출국들이 자국의 수요량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내릴 경우에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일부에서는 식용곡물 대신 사료곡물을 해외에서 생산하려는 계획을 마련하고 있지만, 지난 8월 FAO에서 해외식량기지개발을 신식민지주의(Neo-Colonialism)라고 지적하기 훨씬 전부터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도덕적 문제까지 제기되었던 터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 말 한마디를 또 하나의 불루오션을 만들어내는 신호탄으로 인식한 지방자치단체들은 해외농업기지개발단을 앞세워 외국으로 파견하는 농정 아닌 농정을 펼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제2녹색혁명을 연다!’는 보도자료를 냈다(한국농정신문 8월11일자 보도). 내용의 요지는 겨울철 국내 유휴농지에 식량·사료 작물을 재배함으로써 자급률을 높이고 농가소득 향상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입사료 및 수입곡물 대체효과로 8천9백40억원, 유휴농지 재배확대에 따른 농가소득 제고로 4천3백억원 등의 기대효과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보도자료에 의하면 2012년까지 겨울철 유휴논 66만ha에 작물을 재배함으로써 현재보다 32만 ha를 확대하겠다고 하면서 논 면적은 현재의 101만ha(여름철 벼 재배면적은 95만ha)에서 5년후인 2012년에는 92만ha(여름철 벼 재배면적은 86만 ha)로 5년 사이에 9만ha의 논이 사라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사라진 논 면적과 같다. 녹색으로 포장한 구호 속에 또 다른 농업축소 의도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일반형 및 통일형 초다수성 품종을 사용하여 시비량과 재식밀도를 높이면 수량증가를 가져오기 때문에 논 면적이 감소하더라도 자급률은 오히려 높아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투입 농업에 대한 한계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아직도 70년대 개발독재기의 녹색혁명형 농업에 대한 환상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나아가 최근 10년 사이에 쌀 소비량이 30% 가까이 감소한 사실이 숨겨져 있는 수치상의 쌀 자급률을 핑계로 농지전용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식량위기에 대한 경고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는 농지의 유지·확대를 포기하면서 식량위기의 해결과 농업문제의 해결은 불가능에 가깝다.
논 축소속 자급률 향상이라니?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발전전략을 밝힌 지 한 달도 되기 전에 새만금 간척지의 활용방안이 발표되었다. 국민의 반대 속에 강행한 새만금 간척지의 농업용지 비중을 70%에서 30%로 줄이겠다는 것이 과연 ‘저탄소 녹색’정책이란 말인가?
흙을 쌓아 다지는 복토 공사 등으로 사업비가 당초 예상보다 2배로 늘어나고 골재 조달이나 농지 부족, 환경 문제 등을 야기할 것이 뻔한 정책을 녹색으로 포장하고 있다.
농지를 산업용지로 만들고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고 녹색페인트로 칠한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검은 연기를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으로 바꿨다고 해서 그것이 녹색정책일 수는 없다. 이제는 녹색의 가면을 벗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