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폭락에 성난 농심 “문재인 규탄” 나락 쌓다

전농, 나락 70톤 농식품부·기재부 앞에 적재
민주당사 앞에도 나락 쌓고 연일 농성 펼쳐
“양곡관리법에 따라 즉시 쌀 시장격리해야”

  • 입력 2021.12.02 21:02
  • 수정 2021.12.05 19:18
  • 기자명 김태형·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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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한우준 기자]

지난달 29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열린 ‘벼 시장격리 요구 나락 적재 투쟁 돌입 기자회견’에서 농민들이 농식품부와 기획재정부 앞에 톤백 70여개를 쌓은 뒤 양곡관리법에 따라 벼를 시장격리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변동직불제를 대신하겠다며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도입한 ‘쌀 자동시장격리제’가 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고도 정부의 방해로 발동되지 않는 상황에 연일 농심이 요동치고 있다. 쌀값이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들고도 유일한 안정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모습에 농민들은 농림축산식품부와 기획재정부 앞에 나락 70여톤을 쌓은 데 이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도 공세를 펼쳤다.

지난달 29일 기획재정부(장관 홍남기, 기재부) 남·북문과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 서문 앞에 지게차 한 대와 1톤 화물 트럭 수십 대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트럭 적재함에는 나락이 담긴 1톤짜리 포대가 실려 있었다. 농민들이 나락 70여톤을 가져와 기재부와 농식품부 앞에 적재한 이유는 정부가 양곡관리법에 따른 쌀 자동시장격리제를 발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정된 양곡관리법은 쌀 초과 생산량이 수요량의 3%를 넘을 경우 또는 수확기 가격이 전년보다 5% 이상 하락할 경우 자동으로 시장에서 격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박흥식, 전농)은 이날 나락 적재를 마친 뒤 농식품부와 기획재정부 앞에서 ‘정부부터 법을 지켜라! 벼 시장격리 요구 벼 적재 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양곡관리법에 따른 즉각적인 쌀 시장격리를 촉구했다.

박흥식 전농 의장은 “전국 나락값이 내려가는 걸 보고 이 자리에 서게 됐다”며 “홍남기 기재부 장관에게 지금 당면한 쌀값 부분에 대해 양곡관리법에 따라 30만톤 격리 조치하라고 요구했는데 홍남기 장관은 그 대답으로 지난달 17일 양재동 하나로마트에서 쌀값이 지금도 비싸니 더 떨어뜨려야 한다고 했다. 홍남기 장관을 용서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이어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은 마늘 1만톤을 수입해야 한다고 맞장구를 치고 있다”며 “작금 상태에서 문재인정부에 요구한다. 물가 잡는다고 농민과 쌀값을 잡는 홍남기 장관을 파면하고, 우리 농민들의 절박함을 외면하고 오히려 물가 잡는데 같이 하는 김현수 장관도 파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의장은 “우리는 나락 적재를 시작으로 내일은 민주당사 앞에서 적재와 더불어 철야농성을 하면서 이후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홍균 전국쌀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농민들은 수확 전에는 쌀값 떨어질까 우려하고 수확 후에는 정부의 약속 불이행으로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변동직불금 없애면서 공익직불금으로 제도를 바꿨다. 그때 정부는 농민들에게 쌀값 걱정하지 말라, 쌀값 안정화에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양곡관리법에 분명하게 전년 대비 생산량을 초과하거나 쌀값이 5% 이상 떨어지면 즉각 시장격리를 자동 발동하겠다고 명시했다”며 “정부는 자기 손으로 만든 쌀 자동시장격리제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어 “더욱 사악한 것은 마치 농산물이 물가 상승의 주범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며 “수입농산물에 대한 가격안정 정책은 손도 못 대면서, 만만한 국내 농산물 생산 농가들을 희생양 삼아서 물가를 잡겠다는 홍남기 장관은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농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농촌에서는 지난달 15일 통계청 발표 이후에도 정부 대책 발표가 없자 쌀 납품가격을 낮출 것에 대한 요구와 그로 인한 원료비용을 줄이기 위한 벼 가격조정이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정부 입장과 의지가 가격 결정에 중요한 요인인데 장관들이 가격을 낮추겠다는 발언을 아무렇게나 하고 있어 가격 혼란이 급격히 나타날 징후가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후보에게도 요구한다”며 “쌀 시장격리에 대한 입장은 충분히 환영한다. 하지만 말뿐인 립서비스로 끝난다면 농민들은 당신에게 한 표도 주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쌀 27만톤을 즉시 시장격리해 쌀값 하락을 막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 농식품부는 농협 조합장 모임 정명회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제기한 ‘양곡관리법 관련 규정에 근거한 쌀 시장격리 촉구’ 민원에 대해 “양곡관리법 및 관련 고시는 초과생산량이 생산량의 3% 이상인 경우 수급 상황을 감안해 ‘매입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며 “시장격리는 과잉으로 인해 쌀값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수급뿐만 아니라 쌀값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이어 “금년 쌀 생산량은 전년 대비 10.7% 증가해 공급 과잉이 예상되나 쌀값은 작황이 좋지 않았던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향후 시장상황에 따라 시장격리가 필요한 시점이 되면 즉시 충분한 물량을 시장격리해 시장이 안정될 수 있도록 관리하겠다”고 밝혀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재확인시켰다.

전농은 이튿날에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쌀값 하락 방치하는 정부·여당 규탄대회’를 열어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날 전농은 대회에 앞서 대회 장소에 나락 적재를 위해 한 달간 집회신고를 냈으나,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도로교통 방해 및 안전을 이유로 제지당했다.

그러나 해당 도로는 현재 공사 중인 건물과 접해 임의주차 차량으로 즐비한 상태로, 전농은 공간 사용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농성을 위해 파레트만이라도 현장에 가져올 수 있게 해달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때문에 대회 시작 전 파레트를 들이기 위해 농민들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한 차례 가벼운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박흥식 전농 의장은 “왜 집회를 하는지 뻔히 알면서 우리를 무시하듯 쌀값이 더 떨어져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농사짓고 사는 사람이면 열 안 받겠느냐. 그래서 농민들이 나락 한 줄로 쌓고 항의 좀 하겠다는데 그것조차 막고 있다”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전농은 “민주당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 나라가 기재부 관료들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나라가 아님을 확인시켜줘야 그나마 선거라도 치를 것”이라며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요구한 법에 따른 자동시장격리조차 못한다면 농촌에서 여당 표는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전체 농민의 60% 이상, 소득의 50% 이상을 가져오는 쌀값 하락을 용인하고도 표를 줄 농민은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대회 종료 후 민주당사 앞에 비닐을 깔고 농성을 시작한 농민들은 가져온 파레트 만이라도 농성장 설치에 쓸 수 있게 해달라 요구하며 대치하다, 영등포구청 측이 파레트 세 개 면적에 한해 적재를 허용하겠다 나서면서 당사 앞에 40kg 포대 소량을 쌓아 농성장을 만들고 해산했다. 전농은 시장격리가 발동될 때까지 지역별로 돌아가며 매일 농성장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지난 1일에는 더불어민주당사 앞을 지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농성 중인 박흥식 전농 의장을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눴다. 현장에 함께 있던 양정석 전농 사무총장은 “(박 의장이) 이재명 후보와 쌀 시장격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면서도 “이 후보가 예산은 확보돼 있는지 묻던데, 시장격리는 2년 전에도 했고 예산은 준비돼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쌀값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쌀을 계속 격리 안 하려고 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하며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김태형·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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