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플랫폼 경제시대의 새벽 농민시장

  • 입력 2021.11.21 18:00
  • 수정 2021.11.25 19:24
  • 기자명 최덕천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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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천 상지대 교수
최덕천 상지대 교수

 

우리가 사는 지금 시대는 ‘플랫폼(platform) 경제’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플랫폼 구축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경제체제가 된 것이다. 미국의 아마존, 한국의 카카오나 쿠팡, 배달의 민족 등이 그 사례다.

인터넷 플랫폼 형태의 디지털 시장은 제4차 산업혁명의 바람을 타고 과거 장터나 판매장 중심의 시장을 밀어내고, 인터넷의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 상품과 서비스를 진열해 놓고 영업을 한다. 인터넷 플랫폼 시장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비대면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특히,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실시간 거래가 이뤄지고, 택배는 곧바로 로켓 배송된다. 이제 오프라인 유통과 온라인 유통의 경계가 사라지고 ‘ONO 유통’ 시대가 일반화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의 혁신과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의 진전으로 시장구조는 이미 전환점을 넘어 섰다. 이러한 유통혁명 사이에서 임시 좌판 형태의 재래식 시장은 틈새시장으로 전락해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예컨대, 정기 5일장과 전통 상설시장, 로컬푸드 농민시장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과제가 남는다. 인터넷 플랫폼 시장이 확산될수록 정보화 감수성이 낮은 고령 농민이나 도시의 소시민들이 이 시장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더욱이 가족농·소농 형태로 다품목 소량생산 작부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고령 농민들은 디지털 시장 거래에 접근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들의 작부체계와 그에 적합한 농식품 유통경로를 확보·유지시켜 주는 것은 곧 농산촌 지방소멸을 저지하는데 중요한 장치가 될 수 있다. 특히, 젊은 귀농·귀촌자들에게 농산촌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적정한 생태계를 만들어 주고, 이농과 농사 포기를 예방해 줄 수 있다.

필자가 사는 강원도 원주시에는 1995년 개설된 ‘새벽 농민시장’이 있다. 나는 원주시에 이사 온 후 15년째 단골 장꾼이다. 이 시장은 나에게는 중요한 생활 근거지가 됐다. 새벽 농민시장은 겨울철을 제외하고 매일 새벽 4시부터 8시 정도까지 원주천 둔치 주차장에서 열리는 반짝 시장이다. 초창기에는 회원 농가 수가 600농가가 넘었다. 그러다가 농지가 감소하고, 고령화의 진전으로 인한 참여 포기로 회원 농가 수가 자연 감소하고 있다. 참여 농가의 76.2%가 자동차로 30분 이내에 거주하고, 소비자는 원주 시내와 인근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개인 소비자를 비롯해 소매점, 식당, 재래시장의 소매상 등 다양하다. 1일 평균 약 1,000명 가까운 소비자들이 이 시장을 방문한다. 이들 소비자의 85%는 5km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거주한다. 연간 매출액은 2007년 51억원, 2009년 75억원, 2012년 86억원 수준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8년에는 83억원, 2019년 85억원, 2020년 40억원(코로나19로 시장 폐쇄), 2021년 85억원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새벽 농민시장에 있는 것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새벽에 수확한 제철 농림산물과 그 가공식품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는 기회다. 또한, 안 팔려서 되가져가는 농산물들이 있고, 판매자 대다수는 고령의 농민으로 농산촌 소멸의 징후들이 있다. 2021년 현재는 회원 농가 수가 300농가 이하로 감소 추세에 있다. 그러면, 없는 것 또는 없어져 가는 것은 무엇인가? 별도의 친환경 농림산물 코너, 젊은 청년농부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장에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새벽시장 개설 전에는 공판장 등 도매시장에서 소외된 농산물이 시내 전통시장에서 노점판매를 했다. 그러다가 환경문제, 전통시장 정비, 노점상 단속 등의 이유로 밀려나 결국 원주시 조례가 제정되며 이곳 강변 주차장에서 임시시장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곳에도 ‘농가협의회’가 있는데, 내부 연대의식은 강하나 외부적으로는 폐쇄적이고 활동이 소극적이다. 원주시에서 지원을 잘 하고 있지만, 농민들의 운영 역량 한계로 인해 활성화 또한 둔화돼 있다.

요컨대, 새벽 농민시장은 소규모 가족농들의 사회경제적 활력소, 로컬푸드 운동의 원형, 도농 교류문화의 장이자 지역 공동체의 마지막 보루다. 이 새벽 농민시장을 지속시키는 것은 곧 가족농 단위의 다품목 소량생산 작부체계를 유지시켜 농산촌 소멸을 예방하는 일이자 고령화의 대책이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농림산물의 친환경성과 안전성을 강화해 품질에 대한 무한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체 자주 인증제 도입이 필요하다. 나아가 회원농가 스스로 학습이 선행돼야 한다. 둘째, 판매방식의 다양화다. 주말 야간시장 개설, 겨울 실내 판매장 확보 판매, 나아가 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이나 지역 상가들과의 협업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새벽 농민시장은 기후변화 시대, FTA 시대에 ‘농장과 식탁 사이의 거리’인 푸드 마일(food mile)을 줄이는 만큼 친환경적이고, 지역 공동체 문화 재생의 대안 시장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농민 새벽시장 참여 농민들의 고령화로 스스로 조직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과 같은 사회적 경제조직 또는 시민사회단체 등과 협업하는 ‘로컬푸드 플랫폼 협동조합’ 같은 형태의 조직이 나서 주면 좋겠다. 이들과 농민협의회와 원주시가 협업해 중간지원을 해주고, 온라인-오프라인 유통을 병행케 하는 방안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새벽 농민시장이 탈바꿈해 도농 복합도시의 여건 속에서 사회적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다. 취약한 도농 지역 공동체 교류문화를 지속시키고, 새로운 관광시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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