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쓰레기처리장이 아니다

  • 입력 2021.10.24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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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영광SRF발전소 건설지인 성산리 옆 마을에서 농사짓고 있는 최덕수(홍농읍 진덕리)씨가 지난 15일 전남 영광군청 앞에서 열린 ‘영광SRF쓰레기발전소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스마트폰 화면에 ‘SRF 반대’ 촛불을 켜 놓고 있다. 한승호 기자
영광SRF발전소 건설지인 성산리 옆 마을에서 농사짓고 있는 최덕수(홍농읍 진덕리)씨가 지난 15일 전남 영광군청 앞에서 열린 ‘영광SRF쓰레기발전소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스마트폰 화면에 ‘SRF 반대’ 촛불을 켜 놓고 있다. 한승호 기자

 

 

금요일 저녁 7시가 가까워지자 전남 영광군청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지난 15일, 적지 않은 양의 비까지 내렸지만 다들 아랑곳 않는 눈치였다. 사람들은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란 듯 자연스럽게 얇은 스티로폼 방석을 바닥에 깔고 군청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한쪽에선 촛불을 준비해 나눠주기 시작했다.

운영시간이 한참 지나 텅 비어 마땅할 관공서 한 켠에 그렇게 촛불이 모였다. 어느새 주차장도 가득 찼다. 이곳저곳 헤집는 아이들과 연세 많은 어르신, 수확철 온 하루를 벼 수확에 매진한 농민들마저 당연하다는 듯 초를 받들었다. 물정 모르고 촛불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엔 따스함이 묻어났다.

이처럼 매주 금요일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는 영광SRF쓰레기발전소 반대 범군민대책위원회는 지난달 6일부터 영광군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천막농성은 어느덧 한 달을 훌쩍 넘겼으며,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촛불문화제 역시 지난 15일로 9회차를 맞았다.

환경부에 따르면 SRF라고 불리는 고형연료제품은 ‘음식물류폐기물을 제외한 생활폐기물, 폐합성수지류, 폐합성섬유류, 폐고무류, 폐타이어, 환경부 장관이 인정·고시하는 가연성 고형폐기물’ 등을 가공해 연료로 만든 것이다. SRF발전소에서는 SRF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전기나 열에너지를 만든다. SRF는 한때 신재생에너지로 각광을 받았으나, 민간 시설 난립 방지 및 환경 안전성 강화 등의 목적으로 2017년 이후부턴 사용허가제가 도입됐고 최근엔 신규 시설 설치마저 최대한 제한하는 추세다. SRF는 2019년 법 개정 이후 신재생에너지에서도 제외됐다. 하지만 여전히 농촌 곳곳에서는 사실상 쓰레기로 치부되는 외부 SRF 반입과 SRF발전소 건설·운영반대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으며, 영광군도 그중 한 곳으로 꼽힌다.

40명 남짓한 군민들의 참여 속에 진행된 촛불문화제는 늘 그렇듯 밝은 분위기를 유지했다. 집회나 시위가 아닌, 지역민 누구나 참여해 의견을 나누거나 노래하고 공연할 수 있는 ‘문화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날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이인구 고창군농민회장은 “나락 베고 잠깐 쉬다가 행사 소식을 듣고 왔다. 고창군과 경계에 있는 영광지역에 ‘쓰레기발전소’가 들어선다고 하는데 도시서 나온 쓰레기를 왜 농촌에 가져와 태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창군에도 폐기물을 들여온다 해서 한바탕 싸운 적 있다. 행정에서 주민들 의견을 잘 수렴해 건강 등에 해가 될 시설은 알아서 막아야 하는데 그걸 못하다 보니 농민들, 지역주민들이 밤늦은 시간에 촛불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투쟁 동참 의지를 전했다.

이어 노득용 건설노조 레미콘지회 영광분회장은 “노동자가 무슨 환경을 얘기하냐 농민회가 뭔데 환경 문제에 나서냐 하겠지만 환경 변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게 농업이고, 노동자건 아니고를 떠나 사회에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나서서 바꿔야 한다. 그게 어른된 도리다”라고 참석 이유를 밝혔다.

이밖에 촛불문화제에서는 고창군 계양마을 부녀회장의 판소리와 영광군농민회원의 타령 등의 공연도 펼쳐졌다. 주민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발전소 건설 허가 과정 상의 의혹을 제기하고, 행정을 향해 제대로 된 역할 수행도 촉구했다.

영광SRF쓰레기발전소 반대 범군민대책위원회는 “단순히 내가 사는 지역에 기피시설, 혐오시설을 짓지 말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주민과 농민들의 삶과 건강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폐기물 처리, 에너지 발전 등의 업무를 민간기업 등에 맡기지 말고 국가 차원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 다뤄달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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