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창립 60주년, 아직도 ‘농협답지 못한 농협’

[2021 국정감사 - 농협중앙회·농협경제지주·농협금융지주]

  • 입력 2021.10.17 19:45
  • 수정 2021.10.20 17:2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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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15일 농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각 지주회사·자회사 관련 임원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15일 농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각 지주회사·자회사 관련 임원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 제공

농협중앙회(회장 이성희)와 농협경제지주·농협금융지주 및 금융자회사들에 대한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가 15일 열렸다. 업무현황 보고에서부터 ‘창립 60주년’을 강조한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을 향해 의원들은 축하를 건넸지만, 본격적인 발언에선 60주년이 되도록 여전히 ‘농업 협동조합’으로서 본연의 역할에 소홀한 농협의 현주소를 저마다 소리높여 질타했다.

초미의 화두, 군급식·옵티머스

최근 농협과 관련된 가장 뜨거운 현안은 국방부의 군급식 개편이다. 납품업체 선정방식을 무작정 수의계약에서 경쟁입찰로 바꿔 국산 농산물의 설 자리를 뺏은 국방부에 1차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동안 독점 체제에서 내실을 다지지 못한 농협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미 유명해진 SNS상의 군 부실급식 사진과 농협이 납품한 플라스틱조각 검출 돼지고기, 벌레 검출 닭고기, 상한 식재료 사진들을 선보였다. 그는 “국방부의 군급식 개편에 농해수위 위원들이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 농협에서도 시스템을 투명성있게 관리하고 유지하지 않으면 더 이상 맞설 논리가 없다”고 말했다.

같은당 어기구 의원은 “국방부가 발표한 개선안에 ‘관행화된 공급방식을 개선한다’는 문구가 있다.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군납독점 50년 동안의 관행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거들며 “가장 중요한 건 지역농산물 공급이다. 48개 군납조합 중 24개 조합이 지역농산물 비율 50%를 미달하며 10~20%, 심지어 1%인 농협도 있다”고 덧붙였다.

야당 의원들은 올해도 옵티머스 투자사고에 발언을 집중했다. 특히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이사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사퇴를 강하게 종용했다.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금융감독원이 부당권유금지 위반, 내부통제기준마련업무 위반을 이유로 이미 정 대표의 중징계를 권고했다. 개인적인 송사에 회사가 변호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것도 부당하다”고 지적했으며 같은당 안병길 의원도 “2014년 NH농협카드 고객정보 유출사고에서도 그랬듯 대형 금융사고가 나면 대개 경영진이 사퇴한다. 이런 큰 사고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가 왜 책임지지 않나”라고 맞장구쳤다.

정 대표이사는 소극적·회피성 답변태도로 일관해 야당 위원들을 격노시켰다. 이에 손병환 농협금융지주 대표이사는 “아직 책임관계를 다른 기관들과 다투는 중이라 정 대표의 답변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거취 문제도 내게 일임했으나 교체가 부담되는 여러 정황이 있어 내가 계속 업무를 하도록 지시했다”고 해명해 이를 진정시켰다.

야당 의원들의 옵티머스 관련 질의에 답변하는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정 이사는 소극적인 답변태도로 위원들과 위원장의 매서운 질타를 받았다. 국회사무처 제공
야당 의원들의 옵티머스 관련 질의에 답변하는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정 이사는 소극적인 답변태도로 위원들과 위원장의 매서운 질타를 받았다. 국회 제공

농협이 농협답지 않다?

농민을 위한 농협 본연의 역할엔 여전히 낙제점이 매겨졌다.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2년부터 농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이 추진됐지만 농산물 책임판매, 산지유통 점유율, 경제사업 물량 등 모든 실적이 목표치에 미달되고 차입금은 오히려 4조원이나 늘었다. 농협이 농민과 유착해 이익을 주지 못했다는 게 증명된 것이며 따라서 사업구조 개편은 실패했다”고 꾸짖었다. 같은당 이원택 의원도 “창립 60년 동안 농협은 큰 폭의 성장을 이뤘지만 농업소득은 전혀 오르지 못했다. 농협의 최근 투자계획을 봐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장철훈 농협경제지주 대표이사는 “판매사업에 있어 시장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면이 있다. 시장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고령화된 농민들을 위해 영농기계화 등으로 생산비를 낮추려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신용사업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농협의 전체 가계대출 9조5,510억원 중 5조2,805억원이 서울·경기지역 대출이고 그 중 3조5,617억원이 부동산 관련 대출이다. 수도권의 부동산 관련 대출 때문에 당장 돈이 필요한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지역 농민들을 위한 대출을 늘리라”고 주문했다. 권준학 NH농협은행장은 이에 “오늘부터 전세대출 공급을 재개한다고 발표했다”는 엉뚱한 답변을 해 재차 질타를 받았다.

최 의원은 농협중앙회의 방만경영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3년간 1,972명의 명예퇴직금으로 6,900억원을 지급했다. 법정퇴직금은 별도로 하고도 이렇다. 특히 23명은 징계로 지급이 제한된 기간에 명예퇴직금을 받았고 5명은 징계기간 중에 명예퇴직을 했다. 이들에게 지급한 액수가 86억원”이라고 일갈했다. 이성희 회장은 “다시 잘 살펴보겠다. 그런 모순이 있는지 잘 몰랐다”고 답했다.

위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국회사무처 제공
위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국회 제공

농협 내 도농격차 심각 수준

고질적 병폐인 도시농협 문제에도 목소리가 모였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도시농협과 농촌농협의 조합원 수는 비슷하지만 준조합원 수가 6만3,891명 대 8,806명이다. 도시농협은 농협 브랜드이미지와 각종 세제혜택을 누리면서도 신용사업에만 치중해 비과세예탁금, 조합평균손익, 평균배당 등 모두 농촌농협의 4~5배에 달한다”며 “조합원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일본은 정조합원을 판매금액에 따라 3단계로, 준조합원을 이용실적에 따라 2단계로 나눠 조합원 활동이 실질적으로 농촌에 도움될 수 있도록 한다”고 제언했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도시농협이 출연하는 도농상생기금은 도시농협에서 돌려달라 하면 돌려줄 수밖에 없는 ‘부채’ 성격이다. 5,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했다고 하는데 실제 운용할 수 있는 건 100억원 정도다. 개별 도시농협이 6억원을 출연했다 치면 120만원 밖에 안된다. 심지어 이번에 규정을 바꿔 이조차 절반으로 떨어뜨렸다”고 비판했다.

이성희 회장은 “도농상생자금에 대한 도시농협의 부담이 얼마 안된다는 데 동의한다. 최근 도농상생자금보다도 산지에서 필요한 시설을 건설하는 데 도시농협이 함께 투자하자는 논의를 7대 도시 조합장들과 전개하고 있다. 도시 조합장들의 생각이 이전과 많이 바뀌었고 앞으로 농촌지역에 많은 지원이 이뤄질 걸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그 밖에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은 “전국 조합원의 93%가 지역, 7%가 도시에 있는데 농협 사회공헌활동지원금의 40%, 농촌인재장학금의 15.4%가 도시에 지원되고 있다”며 사회공헌사업의 합리적 안배를 주문했으며 무소속 박덕흠 의원은 “도시농협과 농촌농협의 직원 연봉이 마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같다. 농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급여 차이가 그렇게 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농촌이 소외감·박탈감을 갖지 않게 각별히 신경써 달라”고 당부했다.

국회 농해수위 농협 국감장 전경. 여느때와 같이 농협의 본질적 역할을 질타하는 뜨거운 분위기가 조성됐다. 국회사무처 제공
국회 농해수위 농협 국감장 전경. 여느때와 같이 농협의 본질적 역할을 질타하는 뜨거운 분위기가 조성됐다. 국회 제공

유통문제, 농협이 앞장서야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은 “유럽 주요 국가의 농산물 유통구조는 2~3단계로 유통비용이 20~21%다. 우리는 5~6단계 구조로 45%가 나온다. 농협 하나로마트만이라도 20~23% 정도의 마진만 챙기고 생산자·소비자에게 이익을 줘야한다. 민간 마트들이 당황하도록 농협부터 스스로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며 유통개혁을 주문했다.

무소속 박덕흠 의원은 “하나로마트에서 판매하는 와인 중 90%가 수입산이다. 국산이라고 판매하는 ‘진로와인’ 역시 원료가 스페인산”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하나로마트 전통주 코너에 진로와인은 물론 중국산 술까지 진열돼 있다”며 어처구니없는 실태를 폭로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은 유일하게 농민이 아닌 기업 관점에서 감사를 진행했다. 주 의원은 농협경제지주의 비료 계통구매 사업에 대해 “비료업체들이 농협에 원가대비 50~60% 가격에 상품을 납품하고 있다. 농협이 국내 무기질비료 공급의 97%를 점유해 가격을 후려치고 있다”며 “비료업체들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 회사가 돌아가게는 해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장철훈 농협경제지주 대표이사는 “농가 입장에서 농업 생산원가 절감에 중점을 두고 하다 보니 그런 일이 있는 것 같다. 비료수급도 중요하니 앞으로 업체와 충분히 논의해 개선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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