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여자

  • 입력 2008.09.01 11:57
  • 기자명 소희주 경남 진주시 지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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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예정인 영화 한편 미리 소개할까 한다. 제목은 ‘땅의 여자’. 주인공은 바로 나다. 하하하.

일 년 쯤 전부터 웬 젊은 여자가 내려와 촌 동네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쫓아다니더니 얼마 전부터는 아예 빈 집을 도배해 눌러 앉았다.

▲ 소희주 씨.

어린 나이에 이미 영화감독이 된 이 여인은, 젊은 나이에 농민의 정서를 포착하고 “당신을 카메라에 담고 싶습니다.” 양해를 구하기에 앞서 몸부터 들이밀어 고추 따고 마늘 뽑고 짚 실어 나르고… 최대한 몸으로 떼운 후에 슬그머니 카메라를 끄집어낸다.

이 권우정 감독의 지략에 말려들어 나와 합천의 강선희 언니, 창녕의 변은주, 이렇게 3명을 주인공으로 하고, 여농 회원들과 활동들을 담는 다큐멘터리가 내년 부산 국제영화제에 출품될 예정이다.

여성농민들 사는 모습이 다 거기서 거기라서, 아침에 눈뜨면 새벽일 하고, 애들 일어나면 전쟁 치뤄 어린이집 보내고, 하루종일 하우스에서 씨름하거나 사람들 만나러 나가거나, 저녁은 회의 있거나 그냥 쉬거나. 한 번씩 신랑하고 싸우고… 이렇게 반복되는 생활들인데, 일주일만 찍으면 일 년이 보일 것을, 일 년 동안 따라다닌다니 부담스럽기도 하고 보여줄 것이 없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던 시간들도 어느덧 일 년이 지나버렸다.

이 모든 시간들 속에 권 감독은 우리와 함께 몸을 움직여 우리네 집의 고정일꾼으로서 몫을 단단히 해 주었다. 동네 아지매들도 이 사실을 인지하시고, 우리 하우스에 일이 좀 밀리거나 많아 보이면 “카메라 아가씨 어디갔노?”하며 찾으신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 여성농민들의 삶이 무엇이 되어 드러날 지도 궁금하기는 하지만, 한 시간 남짓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일년을 꼬박 농사일에 함께 구불러야 했던, 하루에 이십여분 정도 찍고 인터뷰하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도록 함께 흙속에 파묻혀야 했던 감독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왜 저리 힘들게 자신의 몸을 놀릴까?’ 안쓰런 마음으로 생각다보니, 새삼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인 것을. 여성농민들의 삶이 고달픈 만큼 여성농민을 찍으려는 감독의 생활도 고달플 수밖에.

얼마 전, 나는 내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준비하여 우리 ‘땅의 여자’ 주인공 내외들을 초대하였다. 그리고 권우정 감독의 전작인 ‘농가일기’ 상영회를 (농단협의 영상기를 몰래 가져와서) 가졌었다.

이미 2년 전, 충남 부여에 귀농하여 농사와 농민운동의 꿈을 키우고 살아가는 이근혁 씨 가족의 삶과 농민회 활동을 담은 농민운동 다큐멘터리 ‘농가일기’를 보면서, 창수(은주 신랑) 왈, “봐라, 지금 세상에서는 농사짓고 살아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기라!”

“그래, 니 간만에 좋은 소리했다이.”
세상에는 질기고 억척스럽고 부지런하고 강단진 그런 여성농민이 대부분이지만, 엽기적이고 황당한 여성농민도 있고, 또 딴전 피우고 놀기 좋아하는 여성농민도 있고, 또 그만큼 부지런하지 못한 여성농민도 있다.
타고난 성격이나 사는 모양새야 어떠하든지 간에 다들 자신이 처해진 책임의 몫을 감당하기 위해 바둥바둥 애쓰며 살아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아직 우리 세상에는 이렇게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줄 수많은 ‘땅의 여자’들이 있어 희망인 것... 맞다. 또한 이러한 땅의 여자들의 삶을 세상에 알리고 도시와 함께 호흡하기 위해 애쓰는 감독이 있어 한발짝 더 희망인 것 같다.

“내년 부산 국제영화제에 ‘땅의 여자’ 보러 오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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