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산지 ‘긴급’ 정부 대책 ‘시급’

고추가격 하락세 “생산비도 못 건지는 상황”

인건비·코로나19·수입고추로 농민들 ‘삼중고’

  • 입력 2021.10.02 00:00
  • 기자명 김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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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한결 기자]

경북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이두희씨의 고추밭에 열린 고추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이두희씨는 서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에 고추를 출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이두희씨의 고추밭에 열린 고추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이두희씨는 서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에 고추를 출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이두희씨 창고에는 출하하지 못한 건고추가 가득 들어차 있다. 8~10월은 건고추가 본격적으로 출하되는 시기지만 이씨는 아직 하나도 내보내지 못한 상태다. 서안동농협공판장에서 형성된 7,000원 후반대의 가격으로는 생산비도 못 건지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서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의 건고추 평균 가격은 7,717원(600g)이다. 같은 달 15일에는 7,825원, 10일에는 7,675원으로 8월 초만 해도 1만원 초반대를 형성했던 고추가격이 점점 하락세를 타면서 9월에 들어선 이후 7,000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산지 농민들은 정부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학진 영양군농민회 사무국장은 “전국 고추가격의 기준이 되는 안동공판장에서 7,000원대가 나오는 것은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며 “농자재와 농약, 인건비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최소 만원 이상은 받아야 생산비가 보장된다”라고 밝혔다.

서안동농협 고추공판장에서 만난 한 농민은 “안팔 수는 없으니 팔러 나왔다”며 “제일 큰 문제는 인건비다. 인건비가 많이 올라 생산비 적자가 반복되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김홍상, 농경연)에 따르면 올해 건고추 생산량은 7만6,000톤에서 8만1,000톤 사이로 평년 대비 7.5~14.8% 증가했다. 올해 재배면적은 3만3,373ha로 평년 대비 9.3% 증가했다.

농경연이 실시한 건고추 생육 실측결과를 보면 9월 중순, 늦장마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 생육 장애가 발생했으나 전체 작황은 양호하며 주산지, 특히 강원·경북·전남 지역 생육은 매우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생산비에도 못 미칠 정도로 고추가격이 하락한 것에는 올해 재배면적이 늘고 작황이 좋아 생산량이 늘었음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소비가 위축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고추 농가들의 대량 공급처인 학교나 식당 등의 운영이 축소되면서 고추뿐 아니라 배추·무를 비롯한 김치 원료의 소비가 대폭 줄었고 농작물들은 가격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두희씨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서도 정부가 농산물가격 보전을 전혀 못하고 있다. 가격이 안 좋을 때 손을 쓰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가격이 떨어진 9월 초부터 수매에 들어갔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농민들은 코로나19뿐 아니라 수입산 고추와도 싸워야 한다. 산지 농민들은 입을 모아 수입고추가 국내산으로 둔갑해 시장에 출하되는 행태를 고발하며 수입 물량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중국 고추가 너무 많다. 중국산 홍고추를 500원이나 1,000원에 들여와 말리는 과정에서 국내산이 되고 공판장에선 우리 고추와 똑같은 가격에 팔린다. 수입을 막을 수 없다면 국내산 표기를 못하도록 철저히 막아야 하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비판했다.

정항우 안동시농민회 사무국장도 “가장 큰 문제는 수입고추다. 수입고추가 국내에서 건조된 후 국내산으로 유통되면서 고추 농가들이 힘들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더했다.

김준철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북도연맹 정책위원장은 “지금 고추 산지는 매우 긴급한 상황”이라며 “작년 기상악화로 생산량이 없어 비축물량이 없을텐데 가격 폭등 시 시장에 풀 수 있도록 대비하려면 2만5,000톤 정도의 물량을 비축해야 한다. 정부는 하루빨리 수매비축을 늘리고 시장격리를 통해 고추가격을 잡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농민들의 의견을 전달하자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1,500톤의 고추가 저장돼 있으며 2019년 때처럼 고추값이 5~6,000원대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수매 계획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수입고추가 건조 후 국내산 고추로 둔갑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20년 이상 고착화된 문제이고, 매년 특별단속을 실시 중”이라며 농민들에게 적발 즉시 신고해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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