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헌법은 경자有전 현실은 경자無전 - 농지 정의가 사라지고 있다

  • 입력 2021.09.19 18:00
  • 기자명 고창건(제주 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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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건(제주 서귀포)

아버지는 평생 물려받은 땅(농지)없이 유채농사와 고구마농사 지어 땅(농지)을 사서 1996년에 4형제에게 골고루 물려주시고 돌아가셨다. 4형제는 어릴 때 가난과 힘든 농사일에 ‘농부는 결코 되지 않겠다’며 농촌을 떠났다. 누이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부산 신발공장에 취직했고 동생들도 학교를 마치자마자 시내에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필자만 학생운동을 한 뒤 농민운동을 결심하고 농촌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평생의 노동으로 1980년도에 평당 2,000원 땅(농지)을 3,000평 샀지만, 2000년도에 아들은 평당 2,000원에 평생 대리임차농으로 농부가 되어간다. 아버지 때 농산물가격이나 아들 때 농산물가격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데, 아버지는 땅을 샀는데 아들은 땅을 살 엄두도 못 내고 물려주신 농지로만 생계를 꾸릴 수가 없어 임차농으로 농부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30년 전이나 농산물가격은 별반 차이 없는데 농지임차료는 엄청나게 오르고, 농자재와 농기계는 농가부채가 되어 돌덩어리로 누르고, 그나마 생산한 농산물에는 해상(항공)운송료-육상운송료, 공영도매시장 수수료(경매-중도매인-상인)와 정산 시 농협 수수료까지 내 등뒤에 알게 모르게 꽂혀있는 빨대를 지고 농사짓고 있으니 돈 벌어 땅을 산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지 모르겠다.

제주도는 1980년대 중문관광단지 개발을 시작으로 1990년「제주도개발특별법」제정으로 인해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게 된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옹기종기 밭담 사이에 유채와 고구마, 산디(밭벼)와 보리 등 밭작물이 5월에 햇살이 비추면 환상의 섬이 된다. 그런 해안가에 위치한 밭들이 해안도로가 생기면서 천정부지로 땅값이 뛰면서 그 땅은 육지재벌들에 의해 싹쓸이 팔려나갔다. 그렇게 해안가 70%의 땅(농지)은 관광개발과 함께 사라진다.

2000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생기고 지금까지 제주는 대규모 선도프로젝트 개발을 감행하여 중산간지역과 그나마 남아있는 농지들이 부동산투기의 대상이 되며 상상초월의 땅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결국 아버지 때 땅값인 평당 2,000원에 아들은 대리임차농으로 20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공익형직불금을 인상했고, 영농에 필요한 유기질비료와 퇴비를 보조하고 있다고 자랑한다지만 대리임차농인 농민들은 그저 허탈하기만 하다. 아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농가경영체에 등록하지 못한 농지는 직불금과 유기질비료와 퇴비를 보조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농가 수가 제주도 농지의 50%가 넘으니 그림의 떡인 것이다.

농가경영체란 괴물은 2000년 중반에 생겨났는데 진짜농부와 가짜농부를 양산하는 문서가 되어버렸다. 제주도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들과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이 경영체에 등록하여 농사짓는 땅들이 제법 많다. 그들을 매년 보는 이들이 있다. 농산물품질관원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이다. 진짜부자들이 농사를 짓고 있어서 우리 농민들은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된 것인지(?) 모르겠다.

부자들의 땅을 관리하는 현대판 마름들이 부동산중개업을 통해 대리임차농을 양산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상당하다. 개발예정지 주변에는 슈퍼보다 많은 부동산중개사무소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그들이 연합해 여론을 조성하고 개발찬성 투쟁까지 조직하는 수준이다.

그들은 농지법에 있는 모든 조항을 이용하여 농지를 거래한다. 사과도 아닌데 농지를 쪼개기 한다. 주말영농체험농장 수준으로 필지를 쪼개 누구나 소유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공유지분형식으로 쪼갠 필지에 40명씩 등록하고 있다. 이렇게 농지는 현실은 대리임차농이 농사짓고 지적도상으로는 자본들의 쪼개기 사고팔고 놀이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헌법은 경자有전인데 현실은 경자無전이 된 것이 오늘날 내가 농사짓고 있는 땅(농지)이다. 농지 정의 없이 미래에 농업은 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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