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일손 부족 문제, ‘공공영역 확대’로 해결해야

‘농촌일손 부족 대책 마련을 위한 전남도민 토론회’ 열려

  • 입력 2021.09.19 18:00
  • 수정 2021.09.20 05:24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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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촌일손 부족 문제로 농민들의 농사 지속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전라남도 농민들이 농촌일손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지난 14일 전라남도의회 초의실에선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전남도 농업정책과, 박진권 전남도의원, 농협 전남도본부 농촌지원단 등이 주최하고 광주전남농민단체협의회가 주관한 ‘농촌일손 부족 대책마련을 위한 전남도민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지금과 같은 인력부족 문제가 계속될 시 농민들의 농사 포기 상황이 속출하고, 결국 우리 농업 자체의 지속가능성도 담보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마련됐다. 특히 가을 수확 및 파종을 앞두고 있는 농민들 입장에서 이 문제는 심각한 사안이기에, 특별히 이날 토론회에서 이야기된 내용들을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소농은 더더욱 사람 구하기 힘들다

무안군 농민 고송자 씨는 농촌인력 부족문제의 심화로 농촌에서 더 이상 농사지을 사람이 없게 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1988년만 해도 한 농가당 1,000~ 2,000평씩 고추를 심었는데, 그땐 여성농민들 10명이 날마다 돌아가며 다른 농가 고추 따는 작업을 같이했다. 그렇게 충분히 농사가 가능했다. 지금은 그분들 다 연세가 드셔서 70~80대다. 그분들만으로는 농사가 불가능하다.”

최근 고씨의 밭에선 80~90대 어르신들이 와서 작업했다. 고씨는 “어르신들은 과거에 농사짓던 가락이 있어 어떻게 작업하셔야 하는지 잘 안다. 그러나 연세가 많으시니, 지치면 일을 하기 어렵지 않나. 그렇다고 그분들에게 왜 일 안 하냐고 뭐라 할 수도 없다. 옛날부터 고생하고 사신 분들인 걸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노동자들을 구하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극도로 어려워졌다. 인건비는 폭등했다. 고씨는 “과거에 노동자들 많이 들어올 땐 일당 7만5,000~8만원이면 됐는데, 코로나 터지면서 올해 봄부터 12만~14만원으로 2배 가량 폭등하더니 지금 무안의 인건비는 일당 15만원”이라 한 뒤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민간 인력중개소에서 인력을 구하려 해도 소농들은 구할 수가 없다. 대농들이 500~1,000만원씩 웃돈을 얹어주면서 ‘오늘 우리 고구마 캐줘’ 이런다. 그러면 인력중개소에선 대농에게만 인력을 보낸다. 소농들은 안 그래도 없는 인력 더더욱 구하기 힘들어 환장한다. 내 속은 썩어들어가건만 인력중개소 사람들 앞에선 ‘예, 예, 알겠습니다’ 이런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여야 사람을 구할 가능성이 약간이나마 더 생기니까. 하다못해 예초기 한 대 돌리려고 한 명 구하려 해도 일당을 16만원 받는단다. 그래도 어쩌나. 사람이 없는데.”

외국 인력을 구하면 일이 순조로울까? 그렇지만도 않다. 고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고구마를 어찌 심는지 가르쳐주니까 다들 일어서더니 싹 가버렸다”는 사례를 이야기했다. 그들의 나라에서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농산물을 재배하는 것,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힘들게 고구마 심는 방법을 알려줬더니 일꾼들이 휙 가버리는 걸 보며 고씨의 속은 더더욱 타들어갔을 테다.

고씨의 아들도 함께 농사짓는다. 아들은 하도 사람을 구하기 힘들어 본인 주위의 친구들 중 직장 다니다 그만두고 쉬는 사람들에게 일을 시켜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기에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농사를 모르는 이들에게 일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구체적으로 지시하기도 어렵지 않냐는 게 고씨의 생각이었다.

“도시에 있는 젊은 사람들이나 회사 다니던 사람들에게 ‘농촌 가서 일하라’고만 하면 오겠나? 안 온다. 아들이 나름대로 인력을 모집하고자 광고도 하고 온갖 애를 썼지만, 몇 사람 와서 하루 일하고 안 오더라. 농촌에서 땀 흐르고 힘든 일 안 하려 한다. 그들이 농촌에 와서 정착하고 살게 하려면, 지금처럼 일당 10만원 주는 식으로는 안 된다.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나주 농민 이연걸 씨도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역 내 인력중개소나 농촌인력중개센터 등에 인력 신청을 하더라도 며칠간 대기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만큼의 인력을 구해 함께 작업하는 게 불가능하다. 나주 내 3~4만명의 농민들이 이런 식으로 인력을 찾아 헤맨다. 한때 유기농 고추도 재배하다가 밭을 다 갈아 엎어버리기도 했다. 일손이 없어서. 지금은 그나마 재배가 쉬운 호박농사에 집중하고 있다.”

하다못해 농산물 가격이라도 잘 나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다. 이씨는 “지난해엔 고추 가격이 1근당 1만원이라 나주 고추농가들의 벌이가 나았다. 그러나 올해는 1근당 8,000원으로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인력도 구하기 힘드니, 지역 농민들 입장에선 농사짓는 보람을 느끼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임연화 나주시 여성농업인지원팀장은 “현재 나주엔 50군데의 사설 인력중개소가 있는데, 다 전화해봤더니 3군데만 농촌으로 보내고 다른 데선 잘 안 보낸다고 하더라. 왜냐고 물으니 노동자들이 안 가려 한다는 것”이라며 “공사장 노동이 일당 20만원을 받는데 농촌에 가면 돈도 그보다 덜 받아서 안 간다는 게 인력중개소의 설명이다. 농산물 값이 보장되면 인건비를 더 내서라도 부를 수 있는데 가격보장이 안 되는 상황이니, 더더욱 농가들로선 어려움이 많다”고 언급했다.

지자체와 농협의 일손 부족문제 해결 위한 노력은?

그렇다면 현재 지역에선 농촌일손 부족문제의 해소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차은령 전남도 농업정책과 여성농업인지원팀장은 “현재 전남도에선 국비사업으로 27개의 농촌인력중개센터를 운영 중인데, 추가로 센터가 필요하다는 시·군 의견을 반영해 8개소를 도비와 시·군비로 같이 운영하고 있다”고 한 뒤 “양파나 마늘 수확처럼 단기적, 일시적 인력이 필요할 시 일손돕기, 자원봉사 등을 통한 인력 지원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엔 군부대 대민지원이 가능하도록 31사단과 협의를 진행했고, 도내 21개 대학들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학생들의 농촌체험 활동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차 팀장은 이어 “장기적으론 청년농업인 육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약 56억원의 예산을 들여 내년에 청년농업인 1,000명을 양성하는 게 우선적 목표”라며 “청년농 진입단계에선 정착지원금도 주고 창농 인큐베이팅 지원 시설도 임대함과 함께, 선도농가와 연결해 청년농이 원하는 신규 영농기술도 배우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농지 확보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숙제도 있다. 차 팀장은 “청년농업인은 후계농으로 선정되면 정착지원금을 받는 2년 동안 의무적으로 영농을 해야 하는데, 그 기간 중 농지를 확보하는 게 상당히 어렵다는 목소리가 많았다”며 “땅을 갖고 있는 농민이 고령이거나 병이 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으면 그 땅을 신규 청년농민들에게 농지은행을 통해 임대해 주면 되는데, 그렇게 안하고 있다더라. 본인이 원하는 농지 확보가 가장 어렵다는 민원이 많다”고 밝혔다.

이창원 전남농협 농촌지원단장은 현재 농협이 진행 중인 농기계 은행사업을 소개했다. 농기계 은행사업은 농작업 대행서비스와 농기계 임대사업으로 나뉜다. 이 단장은 “전남 80군데 농협이 농기계 은행사업에 직접 참여 중”이라며 “이를 위해 전남 농협에선 트랙터 2,256대, 그 외 다른 농기계 6,400대를 보유 중이다. 농작업 대행 실적의 경우 2019년 44만ha, 지난해 44만6,000ha, 올해 7월까지 22만8,000ha를 기록했다. 다만 농기계 은행사업이 여기 그쳐선 안 될 듯하고, 향후 농민에게 적정한 시기에 대행할 수 있는 맞춤형 직영사업을 강화하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임연화 팀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외국인노동자를 데려오면 자가격리비 140만원을 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 농장주나 외국인이 내야 하는 상황인데, 이 부담을 줄이고자 농장주·노동자·지자체가 십시일반해 적은 부담으로 올 수 있게끔 하는 방안을 건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결국 답은 ‘공공영역 강화’에 있다

이날 정학철 화순군농민회 사무국장은 향후 농촌인력 부족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할지를 제시했다.

정 사무국장은 “농사규모가 커지면서 자가노동이나 가족노동만으로는 농사를 감당할 수 없게 됐고 고용노동의 비중이 커져갔다”며 “정부 규모화 정책은 농기계의 발달, 기술의 발달과 함께했지만 정작 사람을 키우는 데는 크게 투자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농업인력 부족 문제를 ‘공공영역 확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대안들을 제시했다.

첫째, 중간지원조직 역할의 공공성 확대다. 그런 차원에서 지자체와 농협이 운영하는 농촌인력지원센터의 역할 확대가 중요하다는 게 정 사무국장의 입장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현재 유료 직업소개사업소는 2019년 3월 기준 1만3,057개인데, 전국에서 운영되는 200여곳의 농촌인력중개센터는 유료 직업소개소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정 사무국장은 “지역에서 운영되는 민간 직업소개소와 농촌인력중개센터의 연계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직업소개소 수수료의 일정 부분을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농가에는 인력수급을, 노동자에게는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일자리 알선부터 책임있게 지원해 나가며 어려움에 처한 농업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직업소개소가 민·관 농촌인력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둘째, 지자체의 인력 지원·육성사업 강화다. 현재 일부 지자체에선 ‘농촌인력지원(중개)센터 설치 및 운영’, ‘농촌인력난 해소를 위한 지원’ 조례 등이 제정돼 있다. 원칙적으로는 조례에 따라 농어촌 인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기본목표와 추진방향을 세우고, 그에 따라 관련 조치를 취하는 게 지자체의 역할이다. 그러나 시행계획을 수립해 체계적으로 농촌인력 지원계획을 세우는 곳은 찾기 힘들다는 게 정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정 사무국장은 “조례에서 규정하는 지원계획 수립을 통해 장기적으로 지역의 인력 육성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셋째, 중장년층 농민 육성사업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 조사결과에 따르면, 도시 중장년 구직자 10명 중 6명은 6개월 이상 장기 실업 상태이며, 10명 중 4명은 직종 변경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사무국장은 이와 관련해 가칭 ‘농민육성 일자리 프로젝트’를 통해 일정기간 교육과 일정한 지원을 마련해 먼저 농업·농촌을 경험해 볼 기회를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정 사무국장이 구상한 프로젝트 추진 일정은 △도시·농촌지역 지자체 간 업무협약 체결 △사업 공고로 지원자 및 농가 모집 △관련 교육 프로그램 운영 △교육 이수자를 대상으로 최종 참가자 선정 △단기(1~3개월), 중기(6개월) 단위로 취업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정 사무국장은 “‘농민육성 일자리 프로젝트’는 농업 특성을 반영하고 사람을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며 “프로젝트가 실효성 있게 진행되려면 지자체의 고용지원금 지원을 통해 적정임금과 노동환경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넷째, 노동자 주 4일 근무제와 해 농업인력 부족문제를 연계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는 게 정 사무국장의 입장이다.

정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농·기업농 중심 농업구조를 가족 단위 중소농의 협업을 통한 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구조개선(규모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현재 3ha 미만의 경지를 가진 농가가 90%, 농가 평균경지면적인 1.5ha 미만의 농가도 70%에 달해 가족단위 중소농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중소농 협업화를 통한 생산주체 육성이 농촌인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고 한국농업 위기를 극복할 방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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