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주역…농촌 시어머니

<독자투고>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국장

  • 입력 2008.08.25 16:56
  • 기자명 신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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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얼마전까지 찜통같은 폭염으로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이다.

더운 한 여름날,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한참 더운 오후 2시쯤 핸드폰으로 전화한통이 온다. 시어머니이다. 아차, 내가 안부전화라도 해야 하는데 서울 사는 며느리가 궁금해 먼저 전화거신 게 분명하다.

‘아이, 더운데 어찌 지내냐? 덥자? 더운데 쉬엄쉬엄 쉬면서 하그라’

‘저는 밭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걱정 마세요. 사무실에 있는데요 뭐. 혹시 어머님 지금까지 밭에서 일하신건 아니시죠?’

‘내 걱정을 말거라. 더워서 일도 못한다. 우째든가 걱정 챙기고 살아라잉’ ‘네, 어머님도요’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방금 전까지도 밭고랑 사이에서 일하시고 늦은 점심 찬물에 밥한술이라도 떠먹기 위해 방안에 들어오셨다는 것을.

시어머니와 농사를 함께 짓고 살 때 농사짓는 것 가지고 종종 다툼이 있었다. 다툼의 이유는 돼지를 키우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농사일이 많은데 자투리땅 곳곳에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심으시는 어머니의 농사철학 때문이었다. 나는 일도 많은데 그 일을 어찌 다 하실꺼냐며 돈도 되지 않는 거 심지 말자고 하고 시어머니는 어찌 땅을 놀린다냐하시며 농사를 돈으로 바라보는 며느리를 못마땅해 하셨다.

결과는 항상 어머니의 승리로 어머니는 여기저기 논밭뿐만 아니라 논두렁에까지 참 여러 가지도 심으셨다. 콩, 팥, 녹두, 동부, 고들빼기, 고추, 각종 채소 등등. 콩도 어디 한가지뿐이랴. 흰콩, 검은콩, 쥐눈이콩 등 종류별로 팥도 마찬가지였다.

눈으로 짐작해도 족히 30가지가 넘는 작목이다. 덕분에 한여름에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한낮에도 쉬지 못하고 쉼 없이 밭을 매고 일을 했었다. 남들은 더운 여름 계곡에서 놀건만 어머님과 나는 집 앞 5미터 앞의 계곡에 발 담글 새도 없이 그렇게 일을 했다. 폭염주의보는 우리에겐 별로 중요하지도 개의치도 않은 문제였다.

그렇게 농사지어서 어머니는 식구들에게 이것저것 나눠주시고 내년에 갈무리할 씨앗을 남기며 ‘난 내 자식들 입속에 이것저것 들어갈 때 제일 행복하다. 그게 바로 농사꾼이다’라고 며느리 앞에서 뿌듯해 하셨다.

우리 시어머니같은 전국의 여성농민들 덕분에 도시의 자식들은 철마다 귀한 우리 농산물을 받고 또한 먹었을 것이다. 또 각종 우리의 씨앗들이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돈도 안 되는 하찮은 일이, 바로 우리들이 먹고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올해로 우리 시어머니의 나이는 66세. 정부에서 말하는 65세 이상의 고령농이다.

농가등록제에 의한 맞춤농정에 따르면 어머니는 고령농, 즉 은퇴농으로 취미생활로 농사지으며 사는 농업의 주역에서는 멀어진 그런 존재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머니는 농사의 주역이며 도시의 자식들을 먹여 살리며 토종씨앗을 지키고 있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보물 같은 존재이다.

내가 어머니께 어머니는 이제 은퇴하셔서 취미로 농사지으셔야 한다고 그게 정부의 정책이라고 말하면 분명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꺼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덜 말라고.

내가 우리 동네에선 젊은이인데, 내가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는데, 내가 얼마나 농사를 잘 짓는데 하시며 열변을 토하실 꺼다.

맞다. 어머니 말씀이 백번 다 맞다. 폭염주의보에도 개의치 않고 일하시는 어머니는 고령농 은퇴농이 아니라 우리나라 농업의 주역이며, 사라지는 토종씨앗의 보존자이며, 도시사람들이 안전한 우리 농산물을 먹게 하는 공급자이며, 또한 전통문화의 보존자이고 전파자이다.

내 자식 입속에 내가 지은 농산물이 들어갈 때 제일 행복하다는 어머니께 오늘은 내가 먼저 안부전화 드려야겠다.

어머니가 진정으로 자랑스럽다고, 예전에 그 깊은 뜻을 몰라서 죄송하다고 말이다.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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