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안 개구리

  • 입력 2008.08.24 16:57
  • 기자명 한도숙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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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연곡사엔 한말 의병장 고광순 선생의 비가 동백나무 아래 서있다. 선생은 임진왜란당시 의병장이신 고경명 장군의 후예이신데 300년 후에 다시 왜의 국권침탈에 분연히 일어서신 것이다.

그런데 선생이 피아골 언저리에서 의병들을 모아 倡義(창의)하는데 민족적 울분을 담아 분연히 일어서고자 하는 창의문을 바로 옆인 구례 광의에 있던 우국지사 매천 황현 선생에게 부탁하였다. 그러나 매천 선생은 야멸차게 거절하였다. 선생이 보기에는 기존 질서를 해치는 반란군으로 보였던 것이다. 종묘사직을 최우선 가치로 지켜야 한다는 조선 사대부로서의 철학이 완고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바로 후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梅泉夜錄(매천야록)은 전하고 있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백성을 지키는 것이지, 임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늦게야 깨우친 것이다. 약육강식의 세상으로 빠르게 변화해 가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역학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로 그 위에 보이는 하늘이 모든 하늘인줄 안 것에 대한 뼈아픈 통찰이 있었던 것이다.

라 비아 캄파시나(La Via Cam pesina)는 1993년 벨기에서 창립하여 현재 56개국 150여 단체가 가입하여 활동하는 단체이며, 우리나라는 전농과 전여농이 함께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전농·전여농이 주관하여 비아 캄파시나 동남 동아시아 지역 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것은 비아 캄파시나라는 국제적 농민 단체에서 우리 전농과 전여농의 투쟁의 성과가 그리 녹녹치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국제연대에서의 힘과 위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자리는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총회는 4년에 한번 그리고 지역 총회는 일 년에 한번 개최하기에 기간 각 국, 각 단체가 모여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이해하고 투쟁해온 결과를 평가 공유하며 향후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을 힘차게 벌여나갈 것을 새롭게 제안하며 결의하는 자리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회합을 통해 신자유주의가 세계 농민들의 삶을 어떻게 약탈하는 지와 우리농민들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속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지 매천 선생의 예를 들었을 뿐이다. 우물 안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다가 큰코다치는 일이 너무도 많았다.

이제 우물에서 벗어나 전체를 보아야 한다. 우리의 삶과 투쟁이 전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로써 이번 총회의 의미를 두고자 한다. 우리는 매천 선생이 국제정세를 모르고 무릎을 치고 후회했던 뼈아픈 기억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망해가는 조국 앞에 칼을 물고 엎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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