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이주노동자 숙소, 대체 어찌하란 말이오”

‘가건물’ 숙소 제공 금지 지침에 일선 현장 수개월째 혼란
“시내서 출퇴근, 영농현실과 안 맞고 각종 비용 부담도 커”

  • 입력 2021.04.18 18:00
  • 수정 2021.04.18 19:09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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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12일 경남 밀양시의 한 농민이 가설건축물로 짓다 공사가 중단된 이주노동자 숙소 앞에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 12일 경남 밀양시의 한 농민이 가설건축물로 짓다 공사가 중단된 이주노동자 숙소 앞에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경남 밀양은 충남 금산과 함께 국내산 깻잎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깻잎 주산지다. 소득 작물 구실을 위해 연중 깻잎 생산을 하기에 시설농가 비중이 높다. 더불어 1,000평 하우스를 기준으로 최소 3명의 인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농가인구 고령화와 맞물려 농촌 가운데서도 유달리 이주노동자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현재 밀양에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만 80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대부분 캄보디아 출신이다. 고용허가제 등록인원 가운데 농축산업 부문에 배치되는 수가 매해 6,000명을 겨우 넘는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이 지역 영농에서 이주노동자의 비중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경기도 포천에서 캄보디아 국적의 이주노동자 고 누온 속헹씨가 한파 속 비닐하우스 안에서 잠을 자다 사망한 사건이 벌어진 뒤 이 깻잎 주산지를 비롯해 전국의 농촌은 연일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사건 발생 직후 발표한 ‘농·어업 외국인 근로자 주거환경 개선방안(1월 6일)’을 통해 비닐하우스 안 가설 건축물(가건물)을 이주노동자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고용허가를 불허하겠다는 대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계획대로라면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의 이주노동자가 한국을 찾을 예정인 가운데, 지난 12일 밀양을 찾아 정부 지침을 선뜻 따르지 못하고 있는 농촌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농가들은 속헹씨의 사고에 대해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지금껏 당국의 묵인 아래 농지 위에 컨테이너나 판넬 등으로 지은 숙소를 제공하던 영세한 농장들이 하루아침에 지침에 맞는 환경을 구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개선방안에는 하우스 ‘안’ 가건물이 아닌 경우, 즉 농지가 아닌 땅에 올린 가건물은 신고 후 필증을 받으면 기숙사로 이용할 수 있다는 단서가 달려있다. 애매모호한 지침과 이에 따른 갑론을박이 더해지며 혼란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중됐다. 한 예로 국토교통부는 여당 국회의원발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 ‘원칙적으로 건축법상 가설건축물이 어디에 있든 주거 용도로 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그렇다더라’는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농가들은 사실상 손을 놓았다. 산외면 농민 김모씨는 지난해 말 농지 귀퉁이 일부를 창고부지로 전환하고 24평 면적에 터를 닦은 뒤 판넬로 숙소를 짓던 와중에 공사를 중단했다. 그는 “가건물은 등기까지 마쳤지만 어떻게 될지 몰라 더 이상 비용을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가건물이라 해도 전혀 문제없는 숙소란 걸 알 텐데 (공무원들이) 한 번을 나와 보질 않는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1월 이후 이주노동자 고용을 원하는 농가로부터 숙소 사진을 받아 1차 검증하는 방식으로 가건물 숙소 제공을 차단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력이 급한 현장에선 어쩔 수 없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데려오거나, 기준을 맞출 여력이 없어 허위로 숙소 사진을 제출해 고용허가를 신청했다고 털어놓는 농가도 있었다.

반발이 끊이지 않자 지난 3월 고용노동부는 계도기간을 통해 올해 9월까지 시간을 주겠다고 밝혔으나, 농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재배지와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 자체가 현장과 동떨어진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농장주가 원룸이나 공동주택 임대를 주선하자니 정주여건이 열악한 농촌을 벗어나 도심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데, 교통이 불편한 농촌에서 영농현장까지 매일 통근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또 주거비용도 급격히 상승하며 각종 우려로 외국인에게 임대를 거부하는 집주인을 설득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마을 인근 단독주택을 임대한 뒤 고용허가를 신청했다는 여성농민 김모씨는 “임대료, 관리비, 가정용 전기·가스 비용 등을 생각하면 이주노동자들이 지금 수준(20만원)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데 받아들일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이주노동자들 역시 원룸이나 아파트, 단독주택 등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도 많은데,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의 급여를 생각하면 매우 부담스러운 비용이기 때문이다.

깻잎 하우스 안에서 만난 젊은 여성 이주노동자 세 명은 “비싸서 시내로 가는 건 싫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달 초 롱 디멍쉐 주한 캄보디아 대사가 현장점검을 위해 밀양을 방문했을 때도 이주노동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만큼 주거비용이 더 오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농가들은 이 같은 조치가 농가와 이주노동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탁상행정이라며 재고를 촉구했다. 밀양시농업외국인고용주연합회 산외면조직의 한 관계자는 “(이주노동자 처우와 관해) 개선해야 할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저희도 통감한다”라며 “그러나 농가들도 어려운 상황에서 겨우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자체적으론 한계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농업에 대해 지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시에서는 이 문제를 외면하면서 밖에는 ‘농업도시’라고 홍보하고 있다”라며 “어떻게 결론이 날진 모르겠으나 농가들은 시 및 정부부처와 계속 소통하려 노력하는 만큼 빠른 해결을 바라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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