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증거

이중기의 농사이야기 - 44

  • 입력 2008.08.18 10:56
  • 기자명 이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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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 시가 조금 지난 시각. 유세차 축문도 없이 조부 제사는 참 싱겁게 끝이 났다. 집 밖에서 올 제관은 많아도 온 제관이 없어서 삼헌은 못하고 단잔으로 끝냈다. 젯밥 잡수시러 온 그 분이야 섭섭하더라도 도리가 없었다. 마침 방학 중인 큰놈이 집에 와 있어서 그 놈이 술을 치고 방학을 빼앗긴 채 학교에 다니는 작은놈은 오래 전에 잠들었다.

술잔을 물리고 병풍에 붙인 지방을 떼어내 소지하고 나는 이윽히 제상을 내려다본다. 우리 집은 예로부터 ‘조율이시’로 진설하지 않고 ‘조율시이’로 한다. 감이 없어 곶감을 쓸 경우에만 곶감이 배 뒤에 놓인다. ‘홍동백서’ 이런 말은 우리 집안 사전에는 올라와 있지 않다. 사십 년 전 젊은 아버지가 그랬듯이 나는 고봉으로 담은 젯밥 한 그릇을 장롱 위에 올려놓고 음복할 준비를 한다. 과일을 깎고 청주 안주로는 그만인 돔배기를 넉넉하게 썰며 큰놈에게 할머니를 깨우라고 한다.

“할매는 포항 할배하고 왕고모가 안 왔다고 삐졌는 모양인데요. 종문이도 깨우끼요?” “나둬라. 자는 놈은 제삿밥 먹을 권리가 없다. 아부지가 종문이 나이 때는 제삿날 잠자다가 어른들이 음복주에 취해 떠드느라 시끄러워서 깼는데도 일어나지는 못하고 자는 척 하느라고 고생 참 많이 했다. 어른들이 제사도 안 지내고 제삿밥 먹는다고 놀리는 바람에 부끄러워서 못 일어났는기라 그러면 배는 또 왜 그렇게도 고픈지…….”

상이 차려지자 큰놈과 마주앉아 음복을 한다. 청주를 마시다말고 큰놈이 얼굴을 찡그리더니 부엌으로 가서 이홉들이 소주병을 들고 온다.  “이 술은 맛이 이상한데요. 저는 소주 마실께요.”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몇 번이나 마당 청소를 하고 마루에 걸레질하고 유리창을 닦고 하느라 분주했지만 막상 제관이 한 사람도 오지를 않자 자정 가깝도록 마루에서 서성거리다가 대문 밖으로 나갔다 오기를 반복하더니 제사지낼 시간이 되자 자리에 눕고 말았다. 몇 번이나 음복을 하시라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 것이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큰놈은 소주 한 병을 후다닥 마셔버리고는 자러 간다고 일어났다. 나는 혼자 마루에 앉아 느긋하게 청주를 홀짝거린다. 오늘 아침에 수확할 복숭아는 어제 오후에 미리 따 놓았기 때문에 늦잠을 잘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제사 후의 새벽 시간이 이렇게 조용한 것도 근 이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그때는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작은아버지가 사업일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서 제사 지내는 순서를 몰라 허둥거리곤 했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무슨 부적처럼 장롱 위에 놓인 밥 한 그릇을 올려다보며 아버지의 아버지의 보릿고개를 생각한다. 사십 년 전 젊은 아버지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제사를 지낸 뒤 장롱 위에 올려놓는 젯밥 한 그릇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 어린 나는 늘 불편했다. 삼시 세 끼 꽁보리밥에 넌더리를 내던 아이의 눈길을 한없이 오래 붙잡고 있던 장롱 위의 쌀밥 한 그릇을 바라보면 아이의 엄마는 ‘그건 먹으면 큰일 난다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아이는 그 말을 듣고 불안한 눈빛으로 밥그릇을 쳐다보기만 했지 그걸 끌어내려 먹을 깜냥은 못 되었다.

제사 뒤의 장롱 위에 올려놓는 밥 한 그릇을 나는 ‘가난의 증거’라고 말하고 싶다. 지지리도 궁상스럽게 배고프던 시절, 농촌공동체가 살아있고 문중을 이루어 살던 시절이라 제관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웬만큼 음식을 장만해도 새벽 음복으로 동이 나고 말았다. 밥그릇 밑바닥을 달달 긁으며 한 술만 더 먹었으면 싶을 때, 장롱 위에 모셔 놓은 고봉밥 한 그릇은 모든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였을 것이다. 제사를 지낸 집에서 이튿날 쌀밥 구경이나 할 수 있도록 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그도 그럴 것이 이튿날 어머니는 그 쌀밥을 밥솥에다 부어 보리쌀과 섞어 밥상 위에 올렸으니 말이다. 우리는 그 밥을 얼마나 달게 먹었던가. 그래서 나는 ‘가난의 증거’ 라는 시 한 편을 쓴다.

“제사가 끝나면 젯밥 한 그릇 장롱 위에 모셨다//사십 년 전 젊은 아버지가 그랬다//살얼음 전율이 좍 깔리는 흑백사진 보릿고개//아버지 제사 지내고 나도 밥 한 그릇 장롱 위로 모신다//스무 살이 지나도록 아들은 그 이유 묻지 않는다//나도 감히 묻지 못한 짐작, 저 가난의 증거!//고봉밥 한 그릇이 절 한 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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