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휴가철

임흥락 (경기도 평택시 안중읍 용성3리)

  • 입력 2008.08.18 10:55
  • 기자명 임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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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갈고 밭 갈고 씨 뿌릴 때 쯤 주말만 되면 동네 앞 신작로는 벚꽃놀이 가는 관광차로 붐빈다. 어쩌다 시간이 맞으면 길이 막혀 농사일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서울 사람들 벚꽃 놀이 갈 때는 여지없이 본격적인 일 철의 시작이다.

뒷산에 수줍게 핀 진달래를 보며 위안을 하지만 농민이 벚꽃 구경 가는 것은 애초에 생각을 안 한다. 농민들에게 그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주위에도 예쁜 꽃이 너무나 많은데’ 그렇게 위안을 한다.

아카시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농민에겐 가장 바쁜 농사철이다. 하루라도 잠 만 푹 자봤으면 하는 때 농민들에겐 휴가의 단꿈도 주5일제의 달콤함도 없다.

심지어 농민의 자식들도 휴가가 없으니 말이다. 그저 일 하는 게 휴가다. 농민들은 그렇게 일만 하는 게 당연하게 받아져 왔다. 모처럼 만난 도시의 대학생들은 얼굴이 까맣지 않으면 농민이 아니라 한다. 여름이면 피서를 떠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진다. 대기업 노동자는 휴가비도 따로 나오고 임금인상 협상도 성공적으로 하고 해서 기분 좋게 휴가를 떠난다. 물론 돈이 없어 여행도 못 가는 노동자도 많지만 그래도 휴가철만 되면 길이 막힌다.

차가 길을 막아 옆 동네 논에 물꼬 보려면 차 막히는 시간을 피해야 한다. 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가가 있다. 그리고 휴가 다녀오라고 회사에서 휴가비도 준다.

농민들에겐 여름이 정말 힘든 시기다. 벼를 수확하기 전 돈이 없을 제일 힘든 시기다. 하우스에 심은 토마토 팔고 오이 팔고 가지 팔아서 겨우 생활하고 아이들 용돈정도 주는 경제적으로 힘들 때다.

가족끼리의 여행은 생각도 못하고 친목계나 농민회에서 함께 하는 행사에 끌려가듯이 가는 행사가 아니면 정말 여름도 그냥 일 만하는 계절일 것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밖에 나와도 걱정이다. 비 오면 비 와서 걱정 가물면 가물어서 걱정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마음 편하다.

하우스 문 열고 닫고 농약 한 번 더치고 가지 오이 제 때 따서 손해 안보는 게 낫다는 생각에 피서를 와서도 편하지 않다. 여름은 일하기도 힘들고 피서가는 것도 힘들 때다. 

추석이 지나고 본격적인 수확철에 볏가마 추스르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벼를 베다 보면 앞산이 빨갛게 변한다. 가장 바쁜 가을 농번기다. 여지없이 단풍놀이 가는 관광철이기도 하다.

봄에 꽃놀이 한 번 못가고 생각도 못하듯 가을에 단풍놀이 가는 것은 농민들에겐 그저 남의 일이고 도시사람들의 일이라고 만 생각한다. 가을 단풍이 노랗게 빨갛게 물들 때 농민들 머릿속은 농협 빚 갚고 농약 값, 기계 값 빼고 자식들 등록금 낼 생각에 머릿속이 노랗고 빨개진다.

농민들에겐 휴가가 따로 없다. 그저 일하는게 휴가다. 겨울동안 잠시라도 일이 없으면 죄짓는 기분으로 사는 사람들이 농민이다. 공무원들도 휴가에 주5일제에다 연차, 월차, 공휴일 다 쉬고 퇴근시간에 퇴근하는데 그래도 노동시간이 선진국 1위라는데 농민들은 일요일도 없이 일하고 퇴근시간도 없이 일하는데 그래도 겨울에 땅이 얼어 일 못하고 기름값 비싸 하우스 작물 안 넣으면 그냥 죄짓는 기분이다.

언제 농민에게 일 한만큼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올까? 언제나 농민들은 판로 걱정 없이 생산비 걱정 없이 국민의 안전한 먹을거리 생산의 자부심으로 농사를 지을 그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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