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밥이냐, 전기냐

  • 입력 2021.03.14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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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다소 극단적인 이 질문에 과연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구태여 선택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잠시, 왜 이런 질문을 하게 됐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할 터다.

성큼 다가온 기후 위기에 탈석탄·탈원전 등의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당면 과제다. 의심의 여지 없이 분명하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라는 깨끗하고 무해한 이미지의 이름을 내건 채 자행되는 오늘날의 농산어촌 파괴 행태는 너무나 폭력적이고 고약하다.

‘환경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오늘날 신재생에너지의 대다수는 환경을 파괴하는 형태로 발전되고 있다. 단 몇 가구가 거주 중인 산골짜기 깊은 곳에 수십개의 풍력 발전기가 들어서는가 하면 태양광 패널들은 산지를 깎아내리다 이젠 농지와 저수지, 바다까지 넘보는 실정이다.

태양광을 예로 들어 ‘태양광 코인’을 타고 오롯이 이윤 창출만을 목적으로 발전설비를 설치하려는 사람들에게 높은 건물이나 구조물도 없는데다 경지 정리가 잘 돼 있고 땅값마저 저렴한 농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투자처다.

지자체마다 조례에 이격거리나 주민 동의 등의 규제 사항을 담고 있다지만, 다소 많이 부실한 까닭에 사실 방지턱으로서의 역할은 크게 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 동의는 실제 사업지와 동떨어진, 행정구역상의 인접 마을 주민 단 몇 명의 서명만으로 갈음할 수 있고 이격거리 제한은 발전용량을 쪼개어 허가를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피할 수 있어서다. 서류만 잘 갖춘다면 행정도 의심의 눈초리 없이 절차를 잘만 진행해 준다.

때문에 오늘날의 발전 사업은 오직 행정과 사업자에 의해, 주민들은 까맣게도 모른 채 진행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농산어촌 마을 한가운데, 너른 논·밭 한복판에 이르기까지 번뜩이는 태양광 패널이 자리 잡게 됐고, 그 과정에서 마을과 공동체는 파괴됐으며 농사짓던 농민은 하루아침에 농지를 빼앗기는 실정이다.

이제 이러한 신재생에너지 갈등 사례는 전국적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발전설비가 보다 많이 집중되고 있는 전남에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지난달 ‘농어촌파괴형 풍력·태양광 반대 전남 연대회의’를 조직했다.

앞서 언급한 밥과 전기에 대한 선택 문제 역시 전남 연대회의가 지난 4일 개최한 토론회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전기 없인 살아도 쌀 없인 못 산다”고 말한 농민은 태양광, 풍력 발전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다. 신재생에너지만큼 중요한 식량자급에 대한 우려와 되돌릴 수 없는 농지 파괴를 걱정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식량 위기론이 전 세계적으로 대두됐음에도 미래의 먹거리를 걱정하는 주체가 대통령도, 정부도 아닌, 신재생에너지라는 빛 좋은 개살구에 살 곳과 쉴 곳을 빼앗기고 있는 농민뿐이란 사실이 그저 통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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