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식탁 책임질 우리 장맛을 찾아서

슬로푸드문화원 주관 ‘참발효어워즈 2021’ 현장 실사 동행기

  • 입력 2021.02.05 10:11
  • 수정 2021.02.05 10:32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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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1월 27일 슬로푸드문화원 주관 ‘참발효어워즈 2021’의 대상 후보 현장 실사에서 충북 괴산군 솔뫼유기농영농조합법인의 조합원 김철규씨(왼쪽)와 구현주 부장이 법인이 생산한 전통된장 및 고추장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 1월 27일 슬로푸드문화원 주관 ‘참발효어워즈 2021’의 대상 후보 현장 실사에서 충북 괴산군 솔뫼유기농영농조합법인의 조합원 김철규씨(왼쪽)와 구현주 부장이 법인이 생산한 전통된장 및 고추장을 소개하고 있다.

식품기업의 손에 맡긴 우리 장류의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 신문에서 여러 차례 탐구해 소개한 바 있다. 산업자본이 전통 먹거리 체계를 주름잡도록 방치한 결과 오늘날 수많은 주방에서는, 본지 권순창 유통·식품 전문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염산으로 콩찌꺼기를 녹인 정체불명의 화학조미액(간장)’, ‘으깬 콩메주 대신 탈지대두를 띄워 만든 무언가(된장)’, ‘고추장맛 페이스트(고추장)’로 한식을 조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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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장제 장류들의 원재료 상당수가 근본 모를 수입산인 것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해보일 정도로 그 생산 방식에 있어 우리 고유의 문화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기업들에 의해 화학첨가물과 콩찌꺼기(탈지대두)로 만든 장을 오랜 기간 소비한 나머지 이것이 정도에서 벗어난 유사품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뒤늦게 혼합간장에 들어간 산분해간장의 비율을 보다 잘 보이게 하도록 관련 규정을 바꾸려 했을 때 ‘소비자의 알 권리’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던 업계의 반발은, 오늘날 우리 장류의 위치를 잘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다.

물론 이런 흐름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 ‘슬로푸드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지난 1986년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이 패스트푸드 체인에 대항하며 시작된 식문화 운동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슬로푸드한국협회와 그 부설 활동기관인 슬로푸드문화원(원장 김원일)이 운동의 기수를 맡고 있다.

슬로푸드문화원은 지난 2019년 '참간장어워즈 2019'을 열어 전통간장을 알렸다.
슬로푸드문화원은 지난 2019년 '참간장어워즈 2019'을 열어 우리 고유의 간장을 알렸다.

현대 식품산업이 만들어 낸 속도와 효율의 식문화에 맞서 전통의 계승, 미식의 즐거움, 느림의 철학을 전파하고 있는 슬로푸드문화원은 최근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만드는 전통발효식품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19년 ‘참간장어워즈 2019’를 주관하며 발효간장의 참맛을 알렸고, 이제는 된장과 고추장까지 포함해 시상하는 ‘참발효어워즈 2021’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그 범주를 술, 식초, 치즈, 젓갈 등 발효식품 전반으로 늘리며 이 행사를 정착시킬 계획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찾고 보존하고 알리려 애쓰는 소멸 위기의 전통발효식품이란 과연 누가, 어떤 생각으로 만드는 걸까. 슬로푸드문화원의 김원일 원장과 유다샘 사무국장 두 사람은 ‘참발효어워즈’에 출품된 장들 중 서류심사와 시민이 참여하는 맛 평가, 그리고 전문가 본선심사를 거친 대상 후보 10곳의 최종 현장 실사를 위해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일까지 쉼 없이 전국을 도는 여정에 나섰다. 실사 일정 내내 영상과 사진 촬영을 담당하는 전문가 두 사람도 동행하며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는다. 그 숱한 발걸음 가운데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소재 솔뫼유기농영농조합법인(솔뫼)을 둘러보는 일정에 동행했다.

이 법인은 참간장어워즈 2019에도 ‘솔뫼전통간장’을 출품, 수상했으니 이번에 낸 된장과 고추장 또한 선정되면 최초로 ‘참발효 3관왕’의 기록을 쓰는 주인공이 된다. 실사단의 인터뷰에는 관행 농사를 짓다 농약 중독으로 고초를 겪은 뒤 공동체 초장기부터 활동한 토박이 생산자 김철규 씨, 그리고 농민운동에 뜻을 두고 귀농했다 때마침 운동의 노선을 전환한 가톨릭농민회의 영향으로 유기농업의 길에 들어선 김의열 대표 두 사람이 응했다.

슬로푸드문화원은 모든 대상 후보 출품작 생산자를 만나기 위해 11일 간 전국을 돌았다. 왼쪽부터 김의열 솔뫼유기농영농조합법인 대표, 김철규 조합원, 이유진 슬로푸드문화원 활동가, 김원일 원장, 유다샘 사무국장
슬로푸드문화원은 모든 대상 후보 출품작 생산자를 만나기 위해 11일 간 전국을 돌았다. 왼쪽부터 김의열 솔뫼유기농영농조합법인 대표, 김철규 조합원, 이유진 슬로푸드문화원 활동가, 김원일 원장, 유다샘 사무국장.

“그 때(초창기)는 친환경농업이라는 용어 자체도 없었는데, 이 친구(김의열 대표)가 제안을 해서 와보니까 혼자 잘 살자고 하는 게 아니라 이 지역을 어떻게 끌어가보자 하는 고민이 포함돼 있더라고요. 저는 가뭄의 단비를 만난 거죠. 그렇게 유기농업 한 지가 벌써 한 32, 3년 되나? 1995년 즈음에는 법인을 시작했지요. 그 어려운 시기에 지역에서 배움터니, 무슨 조직이니, 도서관이니 이런 공동체 활동들을 해냈다는 게 지금 와서 보면 엄청난 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들지요.”

초창기 여섯 농가의 공동체로 시작한 솔뫼가 그 지향점을 설정하는 데엔 지난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출범 이후 생명·공동체 농업 확산이라는 새 방침을 정한 가톨릭농민회의 영향이 지대했다. 또 이러한 가치에 공감하는 소비자들의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은 솔뫼가 생산하는 물량 상당수를 소비하고 있는 주 소비처로, 활발한 도농교류 활동까지 이어지며 이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 됐다.

그 맛에 비법이란 게 따로 없고, 남한강 최상류에서 길어낸 최고의 물과 깨끗한 소금, 그리고 질 좋은 유기농 재료로 계속 도전하다 보니 인정받는 장맛이 나왔다는 겸손한 설명에 김 원장은 ‘자연이 만들어준 장’이라며 찬사를 보낸다.

'참발효어워즈 2021'은 지난 2019년 진행된 '참간장어워즈 2019'의 후속 프로젝트로 시상 대상 품목에 된장, 고추장이 추가됐다. 사진은 솔뫼유기농영농조합법인이 이번 대회에 출품한 전통발효 고추장과 된장.
'참발효어워즈 2021'은 지난 2019년 진행된 '참간장어워즈 2019'의 후속 프로젝트로 시상 대상 품목에 된장, 고추장이 추가됐다. 사진은 솔뫼유기농영농조합법인이 이번 대회에 출품한 전통발효 고추장과 된장.

“메주 같은 경우 한살림에서 반응이 가장 좋다고 하는데,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데 가면 뭐 명인, 이러면서 비법이 있고 그런데, 저희는 명인 한 사람의 형태로 내려왔다기보다는, 공동체가 다 같이 축적한 지식이 쌓여 그 방법이 정형화됐다고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재정 문제 등 경영은 총무를 맡았던 김 대표가 담당했고 저는 생산을 담당했는데, 아유, 맨땅에 헤딩이었죠. 발효실에서 자정까지 머무르면서 계속 온도를 점검하곤 했죠. 할머니들도 찾아다니고 책도 찾아보고 그러면서 만들어낸 거죠.”

“결국 그 시행착오들이 만들어낸 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두 사람에 이어 솔뫼의 현재를 설명하는 역할은 현재 법인의 운영실무를 담당하는 구현주 부장이 맡았다. 실사단은 구 부장의 안내를 따라 생산설비를 견학하고, 이곳 장류 생산방식의 특징을 정리했다. 장의 근간이 되는 메주의 크기 및 모양, 그 공정의 특성뿐만 아니라 메주를 만드는 콩 및 콩과 버무려질 소금의 염도·물의 종류, 장을 담그는 장독대의 재질 등 맛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를 빠짐없이 기록한다.

이 과정은 생산자들의 스토리텔링을 듣는 것과 더불어 모든 대상 후보 견학 과정에서 똑같이 진행되기에, 전통장 생산방식의 다양성을 비출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실제로 지난 '참간장어워즈 2019'에서 수상한 간장들은 얼마 전 출간된 책 '간장 The Ganjang'을 통해 그 각각의 특색이 기록으로 남았다.

▶전통간장 알고픈 이들 위한 책 나왔다

구현주 부장이 발효실에서 볏짚 위에서 발효되고 있는 유기농 메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구현주 부장이 발효실에서 볏짚 위에서 발효되고 있는 유기농 메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토마토 농사를 많이 하거든요. 여기선 토마토를 끓인 뒤 저희 고추장을 섞어 토마토 고추장을 만들어 그걸로 떡볶이를 바로 하곤 해요. 한살림의 떡볶이 양념은 우리 고추장으로 만들고 있기도 하고요.”

솔뫼의 주력 상품은 찹쌀고추장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가정활동이 늘어난 덕인지는 몰라도 메주가 이미 ‘완판’돼버렸다며 더 만들어야 했다는 미소 섞인 아쉬움도 나왔다. 한 말 13만7,000원에 내놓은 솔뫼의 유기농 메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미 모두 주인이 정해져, 볏짚 위에서 발효의 막바지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딱히 비법이 없다’지만, 원재료의 품질유지 및 그 수급방식이 주목할 만하다. 고추장을 예로 들면, 자체 생산하는 메줏가루를 제외한 나머지 고춧가루·엿기름·조청·쌀·소금 모두 한살림에서 공급받는다. 공동체 내에 해당 원료 생산자가 있어도 1차 생산물은 무조건 한살림의 유통체계에 들어갔다 나오는 식으로, 이는 품질 유지가 까다로운 유기농 원료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구 부장은 설명했다.

이쯤 되면 이렇게 생산자들의 철학과 각고의 노력을 녹여내 만든 ‘장맛’이 궁금하지 아니한가. 여기에 소개한 ‘솔뫼전통된장’·‘솔뫼찹쌀고추장’을 비롯해, 슬로푸드문화원은 심사 및 실사 결과를 토대로 오는 26일 열리는 참발효어워즈 2021 시상식에서 간장·된장·고추장 각 부문의 대상 출품작들을 발표한다. 관심이 생겼다면 이날 유튜브 등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생중계되는 시상식을 지켜보자.

슬로푸드문화원은 실사와 더불어 출품작의 이모저모와 현장 생산자의 소감 등을 영상으로 상세히 기록했다.
슬로푸드문화원은 실사와 더불어 출품작의 이모저모와 현장 생산자의 소감 등을 영상으로 상세히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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