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홍보에 농업예산이 새 나간다

문화·관광 성격 한식진흥 사업
문체부 아닌 농식품부가 담당
매년 100억원대 농안기금 투입
한식진흥원 위상·정체성도 애매

  • 입력 2020.09.20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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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한식 홍보에 문화·관광분야가 아닌 농업분야 예산이 소모되고 있다. 국내 농업과 연계가 이뤄진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사업 자체가 농업과는 큰 관계가 없는 성격이다. 심지어 투입하는 예산은 농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예산인 농산물가격안정기금(농안기금)이다.

정부의 한식진흥 사업은 조사·연구 등 기반강화 사업과 전문인력 양성, 취·창업 지원, 음식관광 활성화 등의 네 갈래로 이뤄진다. 당장 눈에 읽히는 바만 해도 명백히 문화·관광의 영역이며 해외 홍보에 각별히 무게를 실어온 지금까지의 사업 경향을 살펴보면 관광 활성화의 목적이 더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가 아닌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의 사업이다. 2010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영부인이었던 김윤옥 여사의 전폭적 관심과 의지에 힘입어 한식재단(현 한식진흥원)이 설립됐고 어떤 이유에선지 농식품부가 이를 관장하게 돼 이후 10년 동안 농식품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2015년 밀라노 엑스포에서 농식품부와 한식재단(현 한식진흥원)이 마련한 ‘한국의 날’ 만찬장 모습.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2015년 밀라노 엑스포에서 농식품부와 한식재단(현 한식진흥원)이 마련한 ‘한국의 날’ 만찬장 모습.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문체부 대신 농식품부 예산이 투입되는 자체도 애매한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예산이 농안기금이라는 점이다. 농안기금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의거, ‘농산물의 원활한 수급과 가격안정을 도모하고 유통구조의 개선을 촉진하기 위해’ 설치하는 기금이며 △수매·비축 등 수급조절 △유통구조 개선 △자조금 지원 △종자산업 진흥 등으로 용도가 한정돼 있다. 대통령령으로 위임한 단서조항까지 뒤져봐도 한식진흥에의 지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농식품부는 해외 한식 홍보 등을 통해 국산 농식품 수출·소비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며, 농안법 조항을 포괄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신선농산물 수출은 품목이 극히 제한적이고 그나마 수요 확대를 기대할 만한 소스류는 대부분 원료를 수입산 농산물에 의존하고 있다. 남은 것은 김치 정도인데, 김치는 수출량 자체가 미미(연간 2만여톤)할뿐더러 한식진흥 사업을 진행한 지난 10년의 수출실적은 오히려 급격히 감소하다 최근 2년 겨우 반짝하는 수준이다. 해외 홍보 이외에 국내에선 한식사업자-생산자단체 연결 사업을 진행 중이라지만 이 실적 역시 3년간 20건으로 내세울 거리가 못 된다.

한식진흥 사업 예산은 현재 거의 전액이 농안기금이며 그 규모는 연간 100억원 이상, 올해는 136억원이다. 국산 농산물 수급에의 간접적 효과조차 입증된 바가 없으며, 설혹 모종의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연간 100억원대의 돈을 투입한 만큼의 성과인가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선이 짙다. 농산물 폭락 시 수급대책이나 도매시장 물류효율화 등에 매년 1억, 2억원의 농안기금이 아쉬운 것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허무한 지출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식진흥 사업의 집행기관인 한식진흥원(이사장 선재)의 입지 또한 애매하다. 100% 농안기금을 받아 운용하는 기관이면서 이미 기관장 스스로가 농업 자체와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문체부 소관의 여타 문화·관광 진흥사업과의 연계가 충실하게 이뤄질 리도 만무하다.

한식진흥원의 역사는 끊임없는 추문으로 얼룩져 있다. 설립 초기부터 영부인 김윤옥 여사와 그 주변인들의 이권 개입 의혹이 드러났고 박근혜정부 때는 비선실세 최순실의 미르재단과 얽히면서 오명을 얻었다. 2015년엔 우리나라에 음식관광 안내서 ‘미쉐린 가이드’를 유치하는 데 외국 자본에 10억원의 농안기금을 갖다바친 일도 있다.

다시 정권이 바뀐 불과 최근까지도 유력 정치인 부인의 입김에 대한 소문이 돌았으며, 그 직원들 역시 방만한 출장비·사업비 지출로 한때 국정감사 때마다 입방아에 올랐다. 이처럼 변변한 사업실적 하나 없이 계속해서 대내외적으로 흔들리는 모습 또한 농식품부 소관하의 어정쩡한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농안기금 낭비 문제는 여러 방면에서 드물잖게 제기돼 왔지만 이처럼 지출 명목부터 엇나가 있는 사업은 한식진흥이 유일하다. 농안기금 문제 이전에, 한식진흥 사업이 그 성격상 농식품부 사업으로 적절한가에 대한 고찰부터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한식진흥 사업은 지난달 28일 시행된「한식진흥법」에 따라 농식품부 소관으로 완전히 굳어졌으며, 만일 이를 문체부로 이관시키고자 한다면 법률 개정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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