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송아지를 찾아서

윤정원 (전남 순천시 서면)

  • 입력 2008.07.21 13:00
  • 기자명 윤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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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친구가 몇 년 전에 시작한 축사 공사를 끝내고, 요즘 송아지를 입식한다고 우리 집 송아지들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 돈이 궁해져서 대뜸 전화부터 했다.

“아이, 우리 암송아지 니가 가져가 부러라.”

“얼마나 주믄 되는데?”

“한 백오십만원만 내라.”

“너, 내일 쇠고기고시 한다고 그랑께 오늘 파는 거 아니냐?”

그 말을 듣고 보니 뉴스에서 내일 미국산 쇠고기 위생조건을 고시하겠다고 난리다.

월말이 다가오니 애들 셋 학원비에, 보험료에, 공과금 등등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니 통장에 잔고는 이미 0원이고, 사료 값은 아예 진작부터 연체다.

정부에서 1%에 주겠다는 사료 값 융자는 서류는 다 해놨는데, 기다리다 지친 신랑이 객지에 돈 좀 벌어보겠다고 나가 있는 동안에 2∼3일 내에 가족관계증명서만 해 가지고 오라는 걸 못 갔더니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나도 같이 소 키우고 있으니까 내가 가서 하면 안 되냐고 해도 막무가내, 자기들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이란다. 에고 에고, 내가 여성농업인 법적 지위, 사회적 지위 떠들고만 다녔지, 내 실속은 하나도 못 차렸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출하통장이라도 챙기고 있었다고 해도 대출은 안됐을 거다. 해야 할 서류가 어디 한두 가지이며, 여자인 내가 제출할 수 없는 것도 있으니까.

3일 만에 송아지 1마리는 간 곳이 없다.

다음 송아지를 팔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하나, 눈앞이 캄캄하다.

사실 송아지 값은 떨어지고, 사료 값은 올라가면서 송아지를 팔아도 쓸 돈이 없는 게 지난해 하반기부터 피부로 느껴진다.

그래서 봄에는 보릿대를 묶어온다. 옥수숫대를 실어다 소에게 먹인다 하면서 친정식구, 시댁식구들까지 총동원되어 난리를 쳤다.

딸이 농사짓는 것이 안쓰러워 자신들 농사일도 제쳐놓고, 가을에 볏짚 묶어주는 것도 모자라 봄에 또 보릿대 구해주랴, 실어주랴 웬 고생이란 말인가?

일이 힘들지 않을 때 우리 엄마는 “니가 열심히 사니까 그래도 좋게 보이고, 괜찮다.” 그랬다가도 일이 고달프면 “얼른 정리하고 다른 일 해라.”하면서 째려보신다. 그럴 때는 미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젊어서 무거운 것 많이 들고 고생하면 나이 들어서 남는 것은 골병뿐이라나.

날씨가 더워지니 70 중반을 훌쩍 넘긴 아버님이 무척 힘들어 하신다.

70이 되면 농사일 그만 하시겠다던 아버님은 요즘 더 일이 늘어서 호미 들고 풀을 메신다.

늘 못미더운 며느리, 혼자 일하는 게 안쓰럽다는 며느리 때문에 은퇴(?)도 못하신 아버님께 송아지 값 좀 좋아지고, 사료 값 부담되지 않으면 용돈이라도 더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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