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도매인 24시] 시장도매인의 자부심, ‘농민과 상생’·‘경매보다 신선’

가격 지지로 생산·출하자 신뢰 키워

“시장도매인제 빠르게 안착해야”

  • 입력 2020.06.21 18:00
  • 수정 2020.06.21 21:57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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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난 15일 밤 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시장도매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5일 밤 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시장도매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오후 11시를 가리키는 시계바늘. 도시엔 어둠이 내려 앉지만 서울 강서농산물도매시장(강서시장)은 환하게 불을 밝혔다. 강서시장은 낮보다는 밤이, 그리고 지금부터가 분주한 시간이라는 게 지난 15일 만난 시장도매인 김진광(65) 우림웰빙청과 대표이사의 설명이다.

우림웰빙청과는 생산·출하자들이 농산물을 갖고 오는 시간을 오후 10시에서 새벽 2시까지로 정했다. 6명의 직원이 있고, 이들의 출근 시간은 오후 10시로 이에 맞춘 것이다. 물론 출하는 낮에 이뤄지기도 한다. 직원들이 자리에 없다면 출하 품목과 수량, 인적사항, 물품대금 송금처 등이 적힌 송품장을 두고 가는 경우도 있다.

다음날 오전 이내에는 출하에 대한 거래 신고와 정산조합을 통한 정산이 이뤄지며 생산·출하자들의 통장에 바로 입금된다. 정산조합이 있어 예전처럼 농산물만 팔고 입금을 하지 않는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생산·출하주는 농가 개인과 영농조합법인, 산지수집상, 지역농협 등이 있다. 김 대표이사가 직접 발품을 팔아 맺어온 관계다. 또한 산지를 돌며 포전거래를 하거나 직접 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다.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은 김 대표이사처럼 30년 가까이 농산물유통에 잔뼈가 굵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산지와의 관계가 두텁다.

시장도매인은 시중 가격이 폭락해도 일정 정도의 생산비를 보장한다. 예를 들어 경매장에서 가격 폭락으로 애호박 가격이 1,000원에 형성됐다면 시장도매인은 수수료 7%를 포기하더라도 5,000원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산지 농가나 농협에 생산보조비를 지급하기도 한다. 또한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해 포장단위의 변경을 조언하고 실제 반영되기도 한다. 이 같이 신뢰관계가 형성된 생산·출하자는 시장도매인을 더 찾게 된다고 한다. 김 대표이사는 “시장도매인은 농민과 한 식구나 다름없다”고 표현했다.

자정을 앞둔 시각. 식사를 마친 직원들이 산지에서 출하된 농산물을 마트의 발주에 따라 팰릿에 품목별로 분류해 쌓는 작업을 이어간다. 그리고 마트의 5톤 화물차가 오면 지게차로 옮겨 싣는다. 마트 화물차의 경우 이르면 오후 11시에 들어오지만, 대체로 새벽 1시에서 5시 사이에 몰린다고 한다.

판매처는 중소형마트가 대부분이다. 10평 남짓 소규모 점포에서 시작한 이들이 마트까지 성장하며 이 대표이사와 거래를 해온 터라 관계가 깊다. 이에 마트 개점 할인판매를 위해 가격을 낮춰 주거나 거래 비용을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늦게 받는 경우도 있다. 이 가운데 한 직원이 부추를 다듬는 모습도 보였다. 산지에서 바쁘다보니 미처 다듬지 못하는 때가 있는데 이럴 경우 농산물이 상해 반품이 들어올 수 있어서 손질을 한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마트에서 선발주를 받아 생산·출하자들로부터 적정량의 농산물을 받는다. 우림웰빙청과는 엽채류를 중심으로 100가지나 될 정도로 많은 농산물을 취급하지만 가끔 특수품목 등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이럴 땐 강서시장을 돌며 마트가 필요로 하는 농산물을 매수해 채워 넣는다. 이 작업도 오전 1시부터 5시 사이에 이뤄진다. 오전 1시부터 5시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유 중 하나다.

농산물 적재가 완료되면 화물차들은 서둘러 서울·경기권 마트로 이동해 농산물을 진열하고 소비자를 맞이한다. 출하부터 소비까지 하루가 채 걸리지 않는 것이다. 시간을 정한 출하와 판매도 소비자에게 신선한 농산물을 빠르게 전하기 위한 방식이다.

다만, 강서시장도 코로나19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1년에 연매출이 100억원이었다면 현재는 30%가량 매출이 떨어진 상황이다.

김 대표이사는 시장도매인제의 장점으로 산지 생산·출하자와의 신뢰와 농산물 신선도를 강조했다. 경매제는 경매 이후엔 농산물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시장도매인은 끊임없이 생산·출하자와 소통하며 관계를 맺고 있기에 가격 지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시장도매인은 산지에서 출하된 농산물을 바로 마트에 판매하지만 경매제의 경우 선별도 하고, 경매도 해야 하니 하루 이틀 묵고 유통단계도 한 단계 늘어 가격과 신선도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대표이사가 시장도매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50억~60억원 보유했던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들이 지금은 500억~600억원이 돼 대기업에 넘어가고 있다. 해외에서도 경매제보다 시장도매인제 도입이 늘어나는데 우리도 빨리 안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이사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발주한 농산물을 싣기 위해 강서시장으로 들어서는 5톤 트럭들이 줄을 이었고, 그 사이로 지게차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새벽을 열고 있었다.

우림웰빙청과 직원들이 각 마트로 발송될 농산물들을 옮기고 있다. 한승호 기자
우림웰빙청과 직원들이 각 마트로 발송될 농산물들을 옮기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 시장도매인 직원들이 출하된 수박을 지게차로 옮기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 시장도매인 직원들이 출하된 수박을 지게차로 옮기고 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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