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제주 농협들이 올해산 마늘 수매단가를 kg당 2,000원으로 결정했다가 농민들에게 ‘혼쭐’이 났다. 성난 농민들이 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를 점거하고 해당 농협 조합장들을 소환, 터무니없는 수매가에 대한 사과 및 재논의 약속을 받아냈다.
제주지역 마늘산지 농협 조합장 9명 등은 지난 15일 회의를 열어 올해산 마늘 수매단가를 kg당 2,000원으로 결정했다. 제주마늘 생산원가는 kg당 2,830원으로, 최소 3,000원대 수매가가 나와야 영농을 지속할 수 있다. 당장 전국적 지탄을 받고 있는 정부 수매단가 2,300원보다도 300원이 낮은 가격이며, 지역농협들의 불안한 재정을 감안하더라도 농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과도한 희생을 강요한 면이 있다.
제주마늘생산자협회(회장 박태환)와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의장 고권섭),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회장 현진희)은 즉각 강도 높은 투쟁에 나섰다. 18일 농협제주지역본부 앞 기자회견에서 박태환 제주마늘협회장은 “수매단가 2,000원 결정은 농민들의 삶을 짓밟는 결정이다. 이는 제주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마늘농가 투쟁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매우 잘못된 가격이며 즉각적인 수정과 조합장들의 사퇴를 요구한다”고 부르짖었다.
고권섭 전농 제주도연맹 의장도 “머슴(조합장)을 뽑아놨더니 주인(조합원)들 요구를 묵살하고 저희들끼리 담합을 하고 있다. 모두 끌어내려야 하지 않겠나. 우리 농민들을 개·돼지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농민들은 곧바로 변대근 농협제주지역본부장과 면담을 갖고 마늘 산지 9개 조합장 소환을 요구했다. 변 본부장은 지역농협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대변하며 “지금 소집한다 해도 조합장마다 급한 일정이 있어 모이기 어렵다”며 사태를 정리하려 했지만, 농민들은 즉각 본부장실을 강제 점거하고 강경한 입장으로 맞섰다. 현진희 전여농 제주도연합회장은 “바빠서 못 온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지금 이것보다 더 급한 일정이 어디 있나. 농민들도 제일 바쁜 시기에 마늘종 자르다 일손을 놓고 왔다. 달려와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라고 매섭게 꾸짖었다.
결국 농민들의 기세에 못 이긴 조합장들이 호출되기에 이르렀다. 다만 소환에 응한 조합장은 이창철 대정농협 조합장(한국마늘산업연합회장)과 현승종 함덕농협 조합장 둘뿐이었으며 시간 또한 오전 10시 기자회견으로부터 5시간이나 지난 오후 3시, 그나마 15분가량을 초과해 도착했다.
하지만 면담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농민들은 본부장실을 점거하면서부터 △조합장들의 성의 있는 사과 △2,000원 수매단가 전면 백지화 △수매단가 재논의 시 농민 참여를 해산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에 이창철 조합장은 농민들 앞에서 ‘23일(수매 개시일) 이전 수매단가 재논의’와 ‘농민들과의 사전 협의’를 약속했고, “낮은 가격결정을 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다소 완곡한 방식의 표현들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요구조건을 수용한 것이다.
제주 농민들의 농협지역본부 점거투쟁은 20여년만에 일어난 이례적인 사건으로, 농민에 대한 농협의 일방적인 압력을 저지하는 효과를 거둬냈다. 농민들은 일단 점거를 풀었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한다는 입장이며, 오는 20일 도청 앞 대규모 집회로 정상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