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먹거리에도 이야기가 있다

  • 입력 2020.05.17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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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며칠 전 몇몇 언론에서 의미있는 기사를 봤다. 광주 본빵협동조합이라는 곳에서 만든 ‘오월 주먹빵’에 대한 기사였다. 오월 주먹빵은 광주 광산구 농민들이 생산한 우리밀·보리·양파·감자 등을 주 원료로 만든 빵이다. 지역에서 제빵동아리를 만들어 빵 굽는 기술을 익힌 주민들이, 판로를 찾기 힘든 농민들과 연대하려는 마음으로 지역 농산물로 만든 빵을 팔게 된 것이다.

그러한 연대활동만으로도 의미 있을진대, 이 빵만이 가진 또 다른 특징이 있다. 광산구 주민들은 빵 표지에 1980년 5월 광주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기록했다. 또한 빵을 구매하면 광주항쟁 당시의 각종 사연 모음집과 항쟁기간의 시간대별 기록까지 같이 제공한다. 먹거리에 슬프고도 자랑스러운 광주의 1980년 5월 이야기들을 담았다.

먹거리에 이야기가 담긴 사례는 이것만이 아니다. 좀 더 흔한 사례가 있다. 학교급식 계약재배 농민이나 생협 생산자의 경우 학교 또는 가정에 먹거리를 보낼 때 편지를 같이 보낸다. 자신들이 어떻게 작물을 재배했는지, 그 과정에서 생긴 어려움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면서 “맛있게 먹어달라”고 당부한다. 먹거리가 농민을 대신해 소비자에게 농민의 사연을 이야기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다. 농민이 만든 먹거리엔 각자 ‘고향’의 이야기가, 그리고 그걸 만든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다만 그 이야기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가 있다.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이러한 이야기들이 실종됐다. 우린 어디서 흘러왔는지 알 길 없는 먹거리를 익숙하게 섭취했다.

패스트푸드는 정책의 영역에까지 등장했다. 어느 지자체에선 코로나19로 힘든 농가들에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보내는 건 못 하겠다면서 라면 상자를 보냈다. 라면에 무슨 이야기가 있겠나. ‘이야기 없는 먹거리’가 늘어나는 건 그 자체로서 우리 농업의 위기이자 우리 먹거리 기본권의 위기이다.

코로나19 이후의 농업과 먹거리운동을 논의할 때, 먹거리가 담고 있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 농산물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됐는지, 만드는 과정에서 농민이 어떤 고생을 했는지, 먹거리가 만들어진 지역엔 어떤 역사가 있는지, 그걸 만든 농민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의 이야기 말이다. 이야기가 있는 먹거리는 그 자체가 도시민들에게 농업·농촌·농민의 소중함을 알 수 있게 하는 교재이다.

광주의 먹거리가 5월 광주민중항쟁을 이야기하듯, 제주도의 먹거리는 제주 4.3의 피어린 역사를, 부산의 먹거리는 한국전쟁 피난민들의 한을 이야기할 수 있다. 토종씨앗은 자신들을 보전해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먹거리들은 농민이 자신들을 만든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먹는 먹거리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앞으로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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