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촌기본소득, 국가균형발전 3.0의 시작

  • 입력 2020.05.17 18:00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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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2_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지난 2월 경기도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기본소득박람회와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무기한 연기됐다. 코로나19 사태가 단 시간 내 종식되기 어렵다고 전망됨에 따라 올해 내 기본소득박람회 개최도 불투명해 보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농민기본소득에 관한 주제발표를 할 예정이었던 나로서도 이번 기본소득박람회의 무기한 연기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 사태는 기본소득 논쟁을 촉발시켰고 그 실현을 성큼 앞당겼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관련 이슈도 초기에는 감염자 동선, 마스크 공급 부족, 신천지 감염신자 폭증으로 발전하더니 종국에는 재난기본소득(긴급재난지원금)으로 빠르게 전환됐다. 급기야 재난기본소득은 전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됐다. 전주시와 경기도 등 지방정부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에 가까운 재난기본소득을 먼저 실시했고 중앙정부도 소득기준 하위 70%만 선별적으로 주려던 것을 전 국민 대상으로 결정했다. 경기도가 기본소득박람회를 10번 해도 이런 효과가 있었을까 싶다. 참 아이러니하다.

이미 지난해부터 농민기본소득(농민수당) 논쟁을 계속 해왔던 터라 재난기본소득 논쟁의 내용과 형식은 크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 주목되는 점은 이번 재난기본소득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전 국민 기본소득도 가능하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그런데 고민되는 부분은 현재와 같이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농촌, 중심 도시와 주변 지역 간 격차와 불평등이 심한 상태에서 전 국민기본소득을 실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자유무역이 우리의 식량안보를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며, 우방이 결코 우리의 안보를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며, 대기업과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결코 우리의 민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말 변하고 있는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인구와 자본 그리고 권력이 집중된 도시문명의 신기루가 무너지고 생태, 자급, 적정 분산을 유지하는 농(農)적 가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지만 정부의 추경안을 보더라도 또 ‘한국형 뉴딜’이라는 정책을 봐도 이에 관한 언급이 없다. 이 와중에 농정의 근본 틀을 바꾸겠다는 농특위는 출범 1년 만에 수장을 잃고 혼란을 겪고 있으며, 재난을 이용한 대기업과 관료들 간의 이익동맹은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참여정부 때 시작한 국가균형발전 정책과 이를 이은 문재인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기본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지금과 같은 공공기관 이전과 도시 개발 위주의 정책이 지속되는 국가균형발전 정책에는 반대한다. 이러한 정책은 농촌 입장에서 보면 대표적인 불균형, 불평등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시와 전국 10개의 혁신도시가 발전하면 할수록 주변 농촌지역은 더욱 피폐화됐다. 세종시가 건설되면서 인근 공주시는 인구 10만 유지도 어려운 상황이 됐고, 세종시 건설로 여러 혜택을 받을 거라 예상됐던 충남도의 인구는 2018년부터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충남도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세종시와 혁신도시 건설이 도농 격차 해소에 도움을 주었는지’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도시민의 57.7%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농촌주민은 12.9%만 그렇다고 응답했다. 지난 총선에서 정부 여당의 공약 중 하나가 공공기관 추가 이전이었기 때문에 향후 공공기관이 혁신도시 또는 지방도시로 이전하면 농촌지역의 인구는 혁신도시와 이전 도시로 더 많이 빨려들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국가균형발전인지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세종시와 10개 혁신도시 건설이 국가균형발전 1.0이고, 이번 총선 공약대로 공공기관 이전 시즌2가 국가균형발전 2.0이라면 국가균형발전 3.0은 이제 농촌기본소득이 돼야 한다. 그간 농촌은 너무 많은 차별과 희생을 당해왔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불임의 도시건설을 지양하고 생명의 터전인 농촌을 살려야 한다. 국토 골짜기 곳곳 어디에 살아도 차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게 직접적인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방법 외엔 답이 없다. ‘전 국민 기본소득보다는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줘야 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녹색평론 김종철 편집인의 고민도 이러한 지점이고,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소농두레를 실천하고 계시는 경남의 천규석 선생이 ‘농촌재생기본소득’을 주창하시는 이유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다.

경기도는 올해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위해 연구용역에 들어갔다.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올해 말 혹은 내년부터 실험 지역(일부 면 또는 리)의 모든 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예정이다. 진정한 기본소득 실험을 경기도 농촌지역에서 시작한다.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이 중앙정부의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견인했듯이 농촌기본소득 실험이 전국 농촌에서의 실시를 견인할 것이다. 우리 농촌은 산업화, 개방화 이후 재난 아닌 적이 없었고 긴급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위정자들만 애써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지금도 변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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