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아도 … 제 자리 찾아가는 지역화폐

정착 난항·현금 깡·사용처 문제 … 논란 딛고 앞으로 전진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7월 시행

  • 입력 2020.05.17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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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역화폐가 처음부터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요긴하고 혁신적인 정책임에도, 농민수당과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뜻하지 않은 바람을 타기 전까진 갖은 고충을 겪으며 오히려 가시밭길을 걸어온 게 사실이다.

가장 원초적인 문제는 운영시스템 구축 및 유지비용이다. 재정이 열악한 기초지자체의 경우 지역화폐를 운영할 역량 자체가 부족해 홍보에 여력을 못 내는 경우가 있다. 당장 가맹점 확보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지역화폐가 유야무야 흘러가게 된다. 실제로 지난 2018년 한 해에만 6종의 지역화폐가 폐지된 바 있다.

부자 지자체라고 순탄하지만은 않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내놓은 지역화폐 ‘제로페이’조차도 계획했던 ‘소득공제 40%’ 적용에 실패하면서 불과 최근까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재정수준과 상관없이 시스템 구축 과정에 다양한 애로사항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지역화폐의 확산은 농민수당·재난기본소득과 함께 인센티브(할인율)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가 지역화폐 인센티브를 보조하고, 행정안전부가 코로나19 대책의 일환으로 인센티브 비율을 10%까지 허용해주면서 숨통이 크게 트였다. 시민들이 현금 10만원으로 11만원짜리 지역화폐를 구매할 수 있는 매력적인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코로나19 이후에도 10%의 인센티브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행안부가 평시 적정 인센티브로 5~8%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화성시 등 몇몇 지자체는 ‘상시 10%’ 인센티브 실현을 두고 행안부와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김진이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는 지자체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적어도 지역화폐를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선 구매를 유도하고 가맹점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 과거 기초지자체가 2~3% 인센티브를 제공할 땐 호응이 크지 않았지만 10%가 되니 궤도에 오르고 있다. 적어도 7%는 돼야 사용자들에게 실익이 체감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지역화폐는 대리구매나 할인매도(속칭 ‘깡’)를 통한 악용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최근 기본소득 이슈와 함께 지역화폐도 탄력을 받고 있지만 이같은 비판 역시 덩달아 커지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달 개인 SNS에서 “지급된 지역화폐는 환전이 불가하고 소상공인에게만 사용해야 하므로 할인매도를 해도 별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세금을 지원해 골목상권과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사업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정책 불신을 초래한다”며 부정거래에 강력한 경종을 울렸다.

몇몇 지자체들은 전자화폐 개발을 통해 이같은 부작용에 대응하고 있다. 카드나 앱을 통해 사용하는 전자화폐의 경우 사용자와 사용액의 기록이 철저하게 기록된다. 부정거래 근절은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전자화폐를 통해 상당부분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 부가적으로 사용자들이 번거로운 거스름돈 계산 없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고, 발행액수의 8~9%에 달하는 지류화폐 제작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전자화폐의 장점이다.

사용처 문제 또한 깊은 골칫거리다. 백화점·대형마트를 제외하는 등 행안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놓긴 했지만 지역마다 사용처가 달라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농촌 지역의 경우엔 농협이 뜨거운 감자다. 대기업이나 다름없는 농협을 사용처에 포함시키자니 지역화폐의 취지가 훼손되고, 그렇다고 배제시키자니 고령 농민들이 지역화폐 사용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농협을 사용처에 포함시킨 일부 지자체의 경우 지역화폐의 60% 이상을 농협이 챙기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도시보다도 농촌 지역의 사용처 논란이 앞으로도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역화폐의 존재가치는 실제로 지역경제를 되살리는 데 성공하고 있는 최근의 사례들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고민이 계속해서 동반돼야겠지만 지역화폐의 앞길은 현재로선 밝게 열려 있다. 국회는 지난 1일자로 지역화폐의 운영과 대상, 전산시스템 구축, 부정사용 방지 등 기본적인 내용을 규정한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하며 지역화폐 지원에 나섰다. 이 법률은 오는 7월 2일부터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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