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밤섬 배 목수⑥ ‘물 비행장’을 탈출하다

  • 입력 2020.05.17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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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봉수야! 아니 이봉수 목수, 축하한다! 자, 수료증이다!

이봉수가 드디어 3년의 수련과정을 모두 마치고 견습생 딱지를 떼는 날이다. 밤섬의 율도조선소 소장이 자신의 직인이 큼지막하게 찍힌 수료증을 수여하였다. 목수 자격증이다.

무술연마를 마친 수제자에게 사부가 검을 하사하듯, 3년간의 수련과정을 마친 사람에게 조선소 측에서 잊지 않고 챙겨주는 것이 수료증 말고 또 있었다. 목공에 필요한 연장 일습이었다.

“톱‧대패‧끌‧망치부터 시작해서 치수 재는 자에 이르기까지 크기별, 종류별로 구색을 갖춘 연장 한 벌을 주더라고요. 배 목수로 밥벌이를 하는 데에 필수적인 연장들이었는데, 그걸 내 돈으로 구입하려면 쌀 열 가마 값은 있어야 할 만큼 비쌌어요. 그러니까 3년 동안 기술을 배우면서 제공한 노동력의 대가로서도 모자람이 없는 대접이었지요.”

드디어 이봉수가 어엿한 배 목수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의 나이 스물 한 살이었다.

정식으로 목수가 된 이봉수가 밤섬의 집을 떠나 처음으로 일거리를 찾아 나선 곳은 인천이었다. 그 시절 인천엔 ‘조선인목수조합’이 결성돼 있었는데 조합원이 무려 570명이나 되었다. 조합에 소속된 목수들은 만석동에 있던 대형조선소 말고도, 멀리 덕적도 등 섬 지방으로 파견되어서 배 짓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봉수 역시 덕적도에 가서 목수 일을 한 적이 있었다는데 그 얘기는 넘어가기로 하고.

어느 날 동년배인 김 목수가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일본 놈들이 함경도 원산 쪽에 비행장을 만든다는데, 거기 가서 한 번 일해 볼 테야?

-이런 실없는 사람 봤나. 배 짓는 목수가 비행장 만드는 데에 가서 무슨 일을 한다는 거야?

-함경도 원산 옆에 있는 문평 앞바다에다, 나무로 비행장 구조물을 만들어서 항공모함처럼 바다에 띄워놓으면, 그 위로 전투기들이 이착륙을 한다는데…일본군은 그걸 ‘물 비행장’이라고 부른다는 거야. 나무로 만들어서 바다에 띄우는 거니까 뭐, 그것도 일종의 배 아닌가? 우린 배 만드는 목수고 말이야. 대우도 특별히 잘 해준다니까, 함께 가서 일해보자고.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이었다.

이봉수 등 여섯 명의 목수들은 인천에서 서울역으로 이동하여 우선 연장 꾸러미를 원산역으로 탁송한 다음에 기차에 올랐다.

지루한 열차 여행 끝에 물 비행장이 들어설 문평에 도착했다. 일행은 먼저 일본 관리들에게 신고를 한 다음, 인부들 숙소 옆에 딸린 밥집으로 향했다. 물 비행장 공사는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전쟁이 치열해지자 일제가 공사를 서두르기 위해서 목수를 추가로 동원했던 것이다.

-아주머니, 우린 내일부터 물 비행장 공사에 나갈 목수들인데 국밥부터 좀 차려주시오.

-쯧쯧쯧, 반갑잖은 사람들이 또 몰려왔구먼.

왠지 목수들을 대하는 함바집 주인 아낙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급기야는 이렇게 말했다.

-물 비행장 공사에 뛰어들기 전에, 이 길로 서울로 도망치는 게 나을 거요.

-그게 무슨 소리요?

-물 비행장에서 일하는 조선 목수들, 석 달째 월급 한 푼 못 받고 붙잡혀 있는데, 제 발로 들어오다니 미쳤어요?

“우린 그 날 밤 숙소를 도망쳐 나와서,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논두렁길을 내달려 간신히 기차역에 당도했고, 때마침 도착한 연장가방을 찾아서 서울행 기차를 타고 도망쳤어요.”

식민지 목수들의 서글픈 야반도주 소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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