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 근무, 농촌 우체국 문 닫으라는 것”

우정사업본부, 농산어촌 별정우체국 인원감축 구조조정
정부, ‘공공서비스 확대’ 외치는데 … 적자 이유로 역주행

  • 입력 2020.05.15 13:21
  • 수정 2020.05.20 09:1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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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한 별정우체국 청사에 2인 관서 운영지침에 대한 항의 현수막과 공적판매 마스크 구입을 안내하는 현수막이 나란히 게시돼 있다.
한 별정우체국 청사에 2인 관서 운영지침에 대한 항의 현수막과 공적판매 마스크 구입을 안내하는 현수막이 나란히 게시돼 있다.

농어촌 지역의 우체국들이 존폐의 기로에 서있다. 우정사업본부(우본)가 경영효율화를 이유로 농어촌 별정우체국들의 인력 충원을 끊으면서 사실상 농어촌에서 우편서비스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공공서비스 확대를 뒷받침할 공공 부문 인력을 늘린다는 것이 문재인정부의 기조지만 우편 서비스는 반대로 가는 모양새다.

별정우체국의 기원은 지난 196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한정된 예산으로 전국에 우편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민간의 투자를 기반으로 한 별정우체국들을 세웠다. 별정국장에 지원하는 개인이 우체국으로 쓰일 시설을 스스로 마련하는 대신, 청사 운영권과 준공무원 대우를 보장하는 형식이다. 취급 업무는 일반우체국과 동일하다. 별정우체국은 당시에도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었던 농산어촌에 주로 개국했고, 지금도 별정우체국 726개소 가운데 94.7%는 읍·면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우본이 우편사업 적자해소를 이유로 시작한 구조조정이다. 별정우체국중앙회(회장 배일진, 별정국중앙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우본은 별정국중앙회에 별정우체국 근무 인력 253명을 감축하겠다고 알렸다. 정원을 축소하고 더이상 채용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력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별정국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2인으로 운영되고 있는 별정우체국은 125곳(17.2%)인데, 이 조치를 시행하면 384곳(53%)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별정국중앙회의 한 이사는 2인 관서 체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규정 상 우체국 최소 근무 인원은 2명이니 2인 관서에서는 원칙적으로 따졌을 때 수시로 규정 위반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사고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이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합니다. 이미 정년을 채우지 못한 명예퇴직이 많은 상황에서 인권이나 노동복지에 상당한 악영향이 생기면 농촌우체국이 문을 닫는 상황까지 이어지는 건 자명하죠.”

“한동안 직원 한 명과 함께 2인 관서로 근무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한 명만 줄어도 화장실 갈 여유가 잘 생기지 않고, 점심시간조차 없다시피 합니다. 농어촌 우체국이라 해서 점심시간에는 잠시 문을 닫을 수 있지만 하루 몇 대 없는 버스 시간 맞춘다고 어르신들이 문을 두드리면 열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휴가 사용이나 병원을 가는 등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충남 서천의 한 별정우체국장은 2018년 라돈 침대 파동이 일어났을 당시 모두가 취급을 꺼리던 상황에서 수거에 나선 것도 우체국이었으며,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도 마스크 공급에 힘썼다고 되돌아봤다. 특히 별정우체국의 경우 실질적으로 개인사업자의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각종 동원 지시에 협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의무를 다하며 농어촌에서 공공서비스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별정우체국 종사자들의 주장이다. 또 농어촌 인구가 급감한 근래에 들어서는 우체국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적자가 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별정우체국에 보장되는 것은 월 40만원 수준의 기본적인 운영비와 직원 인건비뿐이다. 30년이 다 돼 가는 이 우체국 건물은 얼마 전 국장이 자비로 큰돈을 들여 물이 새는 천장을 수리했다.

“흑자를 내는데도 월세가 부담된다며 일반우체국까지 없애는 상황인데요. 인근에는 시간제 우체국으로 오전이나 오후에만 운영되면서 불완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체국도 많아요. 우편취급국(금융 업무를 제외하고 우편만 취급하는 사업자 가맹점)을 두면 된다고 하는데, 농촌에서는 별정우체국이 나가면 적자날 것이 뻔한데 누가 우체국을 하려고 하겠어요. 사실상 별정우체국들을 차례차례 폐국 시키겠다는 조치나 다름이 없습니다. 의료와 교육 분야에 이어서 농촌에서는 이제 우편 서비스마저 사라지게 되는 거죠.”

별정국중앙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별정우체국 수는 전체 우체국(2,668개소)의 27.3%를 차지하나 일반우체국 대비 인력은 8.4%, 예산은 1.9% 수준이다. 별정우체국의 인력을 줄인다고 해서 우본의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질 것이라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별정우체국들은 2인 근무 체계를 강요받은 것과 다름없다며 대규모 행동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전국 각지 별정우체국에는 조치를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는 상태다. 오는 29일에는 별정우체국장들이 단체 연차를 내고 우본 앞에서 규탄집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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